기지촌 할머니 70여 명이 쪽방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평택시 안정리는 밤에는 화려한 네온 불빛이 어지럽지만 낮에는 이보다 더 썰렁할 수가 없다. 거의 대부분 기초생활 수급자인 할머니들은 주한 미군 이전으로 인한 집값 상승 탓에 비싼 월세(15만~20만원)를 감내하며 약값과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할머니들 대부분은 오랜 기지촌 성매매로 정신적·육체적 병마와 홀로 싸우면서 여생을 고독하게 지내고 있다.

6·25 때 부모를 잃어 갈 곳이 없던 할머니는 친구가 “먹고 자고 지낼 수 있는 데가 있어”라고 해서 따라간 곳이 나중에 알고 보니 포주 집이었다. “한동안 나를 팔아넘긴 친구를 많이 미워했었지…” 하던 할머니는 그 후 나환자였던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다녔다. 유방암에 걸리자 “하나님, 제가 먼저 죽으면 우리 어머니를 누가 모시고 병원 가나요”라고 기도드렸다고 한다. 누가 감히 이 할머니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혼혈아를 낳아 입양 보낸 서 할머니는 아이의 배냇저고리를 만지작거리며 “그저 잘 사는지 소식만 들었으면…” 하며 한숨짓는다.

“엄마, 안정리 떠나지 마. 내가 나중에 다시 올게” 하며 미국으로 떠나간 딸, 아들의 소식을 애타게 그리던 박 할머니는 몇 해 전, 기관을 통해 서류를 보냈지만 아무 답장도 받지 못했다. “우리 애들에게 안 좋은 일이 있나봐” 하시는 할머니는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은 채 살고 있다. 누가 이 할머니들의 아픈 가슴을 어루만져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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