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2일부터 열흘 사이 5명의 여성이 남편과 남자친구에게 살해됐고, 아내와 딸을 살해하려던 남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4명의 아내들은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살해했다. 결국 10일간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가 열 명을 꽉 채웠다. ‘누구 하나 죽어야 끝이 난다’는 가정폭력의 현실은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지속적으로 아내들의 남편 살해는 생존을 위한 정당방위라 주장해왔지만 재판부는 정당방위는커녕 ‘계획적 살인’이라며 가중처벌해 왔다(아내를 때리다가 살해한 남편의 ‘죽일 생각은 없었다’는 주장이 재판부에 적극 수용되어 감형되는 것과는 상반된다).

재판부는 오랜 고통과 폭력에서 살아남기 위한 아내들의 자기방어권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 정당방위가 성립하려면 지금 당장 상대를 죽이지 않고서는 내가 죽을 것 같은 상당한 정도의 위협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누구의 기준에서 그 ‘위협이 존재한다/존재하지 않는다’를 결정하느냐 하는 것이다. 1990년 캐나다 대법원의 판결은 “제3자의 관점에서는 남편의 공격이 임박한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폭력 피해 여성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죽음 또는 심각한 신체 상해에 직면해 있다는 인식이 보다 합리적일 수 있음”을 인정했다.

아내들은 남편의 폭력을 멈추게 하고자 많은 시도들을 한다.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남편과 대화를 시도하며, 더 잘 보살피고 순종하거나 혹은 더 저항해보기도 한다. 경찰에 신고도 해보고 급박한 상황에서 집을 탈출하거나 고소를 감행하지만 결국 다시 폭력관계로 회귀할 때, 아내들은 죽거나 죽이지 않으면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음을 직감한다. 폭력의 피해자이지만, 폭력까지도 책임지려고 했던 아내들의 다양한 실천은 가정폭력을 ‘집안일’이라며 서로 외면하는 사회의 철저한 외면을 지지대 삼아 살인을 감행한다. 잘 생각해보면 수원사건이 부부싸움인 줄 알고 신고하지 않았던 목격자들, 부부싸움인 줄 알고 느슨했던 경찰들의 합작품이었던 것처럼, 아내들의 남편 살해는 구조의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아내들이 선택한 마지막 자기방어였다. 한국 법원은 이들에게 경찰에 신고하지 그랬느냐,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그랬느냐, 꼭 죽여야만 했느냐고 묻는다. 유일한 대안이었냐는 (매우) 뒤늦은 물음이다. 이 물음의 대답은 독일 재판부의 말로 대신할 수 있겠다. “타인이나 국가기관의 긴급구조는 정당방위 상황에서 곧바로 활용 가능한 것이어야지, 그렇지 않은 경우까지 이웃이나 경찰 등의 일반적인 구조 가능성을 이유로 정당방위 성립을 부인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 법원은 아직도 가상의 합리적 인간의 잣대로 아내들의 자기방어권을 거부하고 있다. 많이 늦어졌지만, 피해 아내들의 남편 살해가 끊이지 않는 이유를 통찰하고 가정폭력 피해자의 합리성을 기준으로 하는 정당방위 판결을 내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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