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자본 중심 의료 벗어나 여성주의 의료 꿈꾼다

 

살림의료생활협동조합 유여원 사무국장, 민앵 이사장, 추혜인 주치의, 김혜정 조직교육실장(왼쪽부터) 등이 6일 서울 은평구 살림이재단 5층에 마련된 생협 주치의 상담실에서 의료기관 운영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홍효식 / 여성신문 사진기자 yesphoto@womennews.co.kr
살림의료생활협동조합 유여원 사무국장, 민앵 이사장, 추혜인 주치의, 김혜정 조직교육실장(왼쪽부터) 등이 6일 서울 은평구 살림이재단 5층에 마련된 생협 주치의 상담실에서 의료기관 운영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홍효식 / 여성신문 사진기자 yesphoto@womennews.co.kr
여성주의 의료를 지향하는 생활협동조합이 오는 9월 개원한다. 올해 유엔이 정한 협동조합의 해를 맞아 생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서울 은평구에 문을 여는 ‘살림의료생협’은 의료 불평등이 없는 건강한 마을을 꿈꾸는 국내 최초의 여성주의 의료생협이다.

6일 찾은 서울 역촌동 살림이재단 5층에 마련된 살림의료생협에선 가정의학과 전문의와 생협 관계자들이 막바지 개원 준비에 한창이었다. 현재 조합원은 430명. 여성이 다수(80%)지만 남성들도 적극 활동하고 있다. 이사진에는 여성학자 전희경, 최순옥 열린사회은평시민회 대표, 조혜인 변호사, 박현주 가정의학과 전문의 등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서울과 경기 고양·파주시에 집과 직장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의료생협을 이용할 수 있다.

전희경 이사는 “여성이란 이유로, 성소수자란 이유로, 비혼이란 이유로,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건강을 잃어가고 있다”며 “남성·자본 중심 의료체계를 뛰어넘어 아프기 전 예방하는 의료, 노후가 두렵지 않은 보살핌의 관계망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살림의료생협은 6년 전 언니네트워크 상근활동가 유여원씨가 여성주의의 사모임에 있던 추혜인씨와 의기투합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유씨는 함께걸음의료생협, 한국의료생협연합회에서 상근하며 살림살이를 배웠고, 추씨는 서울대병원에서 가정의학과 수련 코스를 마쳤다. 2009년 준비 모임을 꾸려 지난해 발기인대회 후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건강실천단 운영부터 무료 건강강좌 개설, 여성주의 학교까지 알찬 활동을 벌였다. 지난 2월 공식 창립총회도 마쳤다. 또 개원 준비 회의인 ‘꿈꾸는 개원 애벌레’에선 개원 작업도 착착 진행 중이다.

은평에 터를 잡은 것은 1인 여성 가구주나 한부모 가정, 독거노인 등이 다른 지역보다 많아서다. 개원 전부터 소모임도 활발하다. 이 중 텃밭 가꾸기 모임인 ‘주렁주렁’은 도심의 버려진 땅에 ‘씨앗폭탄’을 던져 농지로 점령하는 도시 게릴라 가드닝 활동도 벌인다.

추씨는 “여성 의료인에 의한 친절한 진료를 넘어 의료서비스가 여성주의적으로 재편될 필요가 있다”며 “여성들이 돈을 출자해 조합원이 되고 의료생협의 운영 방식을 결정하는 여성주의 의료를 펼치고 싶다. 개원하면 밤에는 성폭력·가정폭력 위기지원센터를 운영하거나 다른 1차 의료기관이 하기 힘든 가정방문 진료도 할 수 있다. 여성 노인을 위한 데이케어센터를 열거나 여성 노인 요양시설을 세우는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민앵 이사장은 “아기를 낳지 않는 가임기 여성이나 비혼, 1인 가구 여성이 크게 늘었지만 의료체계는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여성들이 생애주기에 따라 ‘맞춤형’으로 살 것이라 여긴다는 것이다.

추씨는 “산부인과 의사의 권유로 수십만원대인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을 한 레즈비언도 있었다. 의사는 여성 환자가 레즈비언일 가능성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다”며 “40대 여성은 당연히 출산을 한 기혼 여성으로 보고 검사할 때 ‘성관계가 있었느냐’는 질문도 안 하는 산부인과 의사들도 있다. 여성주의 의료생협이 이 같은 현실을 깨는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 이사장은 “살림의료생협은 살림의 힘으로 서로 돌보는 건강 공동체”라며 “3분 진료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고, 생명과 소통하는 동네 병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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