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이면 노래를 좋아하는 딸아이와 함께 가끔 K팝스타를 본다. 열다섯, 열일곱의 어린 나이에 자신의 꿈을 향해 토해내는 그 열정과 노력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히곤 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미션 곡들을 훌륭히 소화해서 마치 자신의 노래인 것처럼 부를 때는 잘 다져진 기본기에 감탄이 저절로 나왔고 그들의 나이를 의심케 했다.

그런데 이번 주에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실력과 감동, 열정 모든 면에서 잘 갖추어진 이미쉘이 떨어지고 심사위원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던 이승훈이 인터넷 사전투표와 실시간 문자투표에 의해 4강에 진출한 것이다. 가수에게 필요한 기본적 자질과 능력을 갖추었기에 당연히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내 딸아이와 나는 우리도 투표에 참여할걸, 그저 잘한다고 박수만 치고 있을 것이 아니라 한 표라도 보탤걸 하며 한참을 후회했다.

300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끝났다. 20일이라는 선거운동 기간은 후보들에게는 자신이 얼마나 잘났는가를 알리고, 또 상대 후보가 얼마나 나쁜 인간인가를 알리기에는 엄청 짧고 아쉬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에게 그 시간은 분노와 역겨움 그리고 이로 인한 화를 참아야 하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다. 민주주의의 꽃이 선거일진데 이번 선거에는 꽃향기 대신 구린내가 진동했다.

주요 정당들은 모두 개혁 공천을 강조했지만, 정작 밥상에 차려진 반찬은 그리 신통치가 않았다. 신선도도 떨어지고, 남의 글을 자신의 글처럼 복사해서 학위를 받고, 성희롱에 차마 입에 담기도 역겨운 막말들을 서슴지 않았던 위인들을 국민의 대표감으로 내놓았다. 국회의원으로서의 자질은 차치하고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도덕성조차도 전무한 이들이 밥상에 올라왔다. 수신도 안 된 위인들이 치국을 하겠다고 덤벼든 꼴이니 그저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후보 등록 마감일을 코앞에 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여성정치운동에 확실하게 찬물을 끼얹었다. 가산점을 부여한 당내 경선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으므로 탈락 후보가 불복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려 여성 후보와의 경선에서 패배한 후보들이 해당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경선 시 가산점 부여와 지역구 여성의무공천제도는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여러 해에 걸친 여성운동의 결과로 마련된 장치들인데 이를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다. 여성정치 세력화에 역행한 공로(?)를 인정해 중앙선관위에 물거품상이라도 수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선거는 끝났고 당락도 결정됐다. 분노에 가까운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하는 투표 결과도 있을 것이고, 유권자 스스로가 자화자찬을 해도 될 만한 결과가 나온 지역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시작이다. 국민은 매서운 눈으로 그들을 감시하고 채찍질을 가해야 할 것이고 여성단체들은 선거기간에 드러난 제도적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한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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