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면 불안한 남자들, 자기 성찰 필요해”
‘남자의 물건’ 내고 한국 사회 속 남성 문제 집중 성찰

 

남자를 탐구하는 남자, 문화심리학자 김정운(50·사진) 교수는 파마머리와 튀는 옷차림만큼이나 늘 화젯거리를 몰고 다닌다. 최근 한 TV 토크쇼에서의 그의 파격 발언은 “수컷들의 멘토”라는 명성(?)과 함께 연일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학자가 좀체 갖기 힘든 그의 대중적 스타성, 그것은 논리와 이념으로 무장된 아카데미의 관념적 아성을 직설화법으로 뚫고 들어가 드러내는 불편한 진실에 있지 않을까. 그는 이를 두고 “교수라는 이미지와 말투, 행동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특히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생각은 질색”이라며 “공감 가는 얘기를 많이 하려 한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계몽’의 시대는 저 멀리 사라지고 ‘공감’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는 것.

방송과 강연에서 훨훨 날다가 올해 초부터 조용한 재충전을 위해 일본에 틀어박혀 있는 그와 국제전화로 긴 얘기를 나누었다. 그의 ‘잠적’지는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명예학장으로 있는 나라현립대학교인데, 지난 가을 식사 자리에서 나눈 이 교수와의 대화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이 교수는 “인생에서 피크(peak)를 만들면 내려오는 길밖에 없다. 피크가 눈에 보이는 듯하면 산을 바로 바꿔 타야 한다”는 충고를 건넸다는 것. 막연히 “이건 아니다”라고 속으로 되뇌던 그에겐 바짝 와 닿는 말이었다. 이렇게 해서 건너간 나라, 너무나 한적하고 외진 곳에서 외로움에 떨다가 그가 얻은 것은 자기 성찰이다. 그것은 곧 우리 사회의 문제로 직결된다.

방송·강연 ‘스타’자리 떠나 사직서까지 내며 재충전 중

“사람들은 ‘문제’를 생각할 때 다 사회구조적으로만 설명하려 애쓴다. 그 부분에서 난 누구보다도 자신 있지만, 우리 사회의 문제를 다차원적으로 그러나 구체적으로 접근하고 싶었다. 남자들은 권력을 쥐지 못할까봐, 사회적 지위가 사라질까봐 늘 불안해 자꾸 적을 만들면서 자기 확인을 하려 한다. 명확한 호불호로 배타적이다. 왜 이런 자신의 문제에 대해 성찰을 안 할까. 아마도 자신의 문제를 돌아보는 것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해서일 것이다. 그래서 난 한국 사회의 문제가 집적돼 있는 내 얘기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우리 사회 주류로 불리는 4050 남자들, 그들의 문화적 결핍감이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부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그의 삶도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그는 재수로 들어간 대학(고려대 심리학과)에서 시대정신에 따라 학생운동을 하다 제적을 당하고 곧장 군대로 끌려갔다. 그 자신의 말에 따르면 “인생이 마흔 살까지 꼬이게 된” 첫 단추였다. 고된 훈련과 군화에 발이 짓무르고 다리에 피고름이 맺혀 뼈가 보일 정도로 고생을 하다 “제대 후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란 생각에 턱에 총구를 들이대고 자살 직전까지도 가봤다. 그가 택한 군대에서의 생존 전략은 눈을 뜨면 먹고 또 먹고, 그러다 지치면 노래를 부르거나 자는 것. “또라이” 소리를 듣다 어느덧 고참병이 되니 “절로 훌륭한 군인이 돼”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제대와 동시에 제적이 취소돼 복교하고 무사히 졸업했다. 같이 학생운동을 하던 친구들은 신념에 따라 멋지게 노동운동에 투신하는 듯해 늘 자신이 비겁하다는 생각에 시달렸던 그는 “좌파 쪽 공부를 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독일 유학을 택한다. 여기에서 박사학위(베를린자유대학)를 따고 전임강사로 활동하기까지의 13년, 시대적 변화를 몸으로 맞았다. 바로 그의 눈앞에서 벌어진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의 붕괴다. 마르크스 자본론에 심취했던 그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이었다. “역사의 제일 앞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보면서 역사의 제일 뒤에 서 있었구나” 실감하면서 정신적 공황에 빠졌다. 이렇게 해서 ‘문화’ 쪽으로 방향타를 돌리고, 문화가 인간 심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집중하게 된다. 처음으로 국내에 문화심리학을 도입하게 된 배경이다. 대부분의 박사학위 소지자들처럼 그도 부푼 꿈을 안고 귀국했으나 1년 반 정도를 실업자 신세로 지내야 했다. 음대 출신인 아내의 음악 레슨 덕에 생계를 꾸려가면서 그는 한남대교 밑에서 팔뚝만 한 잉어를 낚는 것으로 소일거리를 삼았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와 라면에 붕어를 넣고 함께 끓여 먹기도 여러 번 했다. 그러다가 명지대 교수(교양학부)로 임용돼 자리를 잡았다. 나름대로 안정되고 성공된 삶을 획득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의 삶, 특히 40대 남성으로서의 삶은 단조롭고 재미없었다.

과로 사회가 남자들의 삶을 재미없게 만든다

“남자들의 교양 수준은 늘 실망스럽다. 정치인을 욕하거나 골프 얘기 아니면 술 먹는 얘기다. 그런 것 말고 다른 얘기, 다양성이 없다. 그 근저엔 집단불안증이 있다. 정치인, 법조인의 성추행이나 소설가 복거일의 반여성적 발언 등 후에 박살이 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런 구태가 되풀이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들의 행태는 보통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하는 농담을 그대로 공적 영역으로 옮겨온 것에 불과하다. 얘깃거리 자체가 한국 남성들에겐 극히 제한적이고, 삶이 문화적으로 풍요롭지 못하고 결핍돼 있다는 방증이다.”

이 무재미와 무취향의 남성들의 삶 이면에 버티고 있는 것은 과도한 피로 사회. 그가 독일에서 돌아와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하는 얘기 역시 이 얘기다.

“일과 가정생활의 양립, 한국 남성들에겐 가장 결핍돼 있는 부분이다. 주5일제나 이런 문제와 관련해 정부에 자문 역할도 열심히 했건만 다 허사였다. 이런 개념 자체가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기엔 좀 무리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소위 ‘얼리 버드’ 세대인 40대 중반 이후 세대가 이 땅에서 사라져야 비로소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 4050 남자들에겐 집단적인 병이 있는데, 그건 바로 행복하면 불안감을 느끼고 재미있으면 죄의식부터 느끼는 본능 비슷한 거다.”

이 과로 사회의 집단 증후군이 치명적인 이유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에너지는 지속가능한 삶에서 끊임없이 샘솟기 마련이다.

“왜 사느냐에 대한 목적의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하고 재미있기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다. 결국 패러다임이 전환돼야 하는 문제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일주일 전에 학교에 사직서를 냈다고 말했다. 정년이 보장된,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직업을 과감히 버린 이유는? 앞으로 50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이제라도 내가 내 삶의 주인처럼 살아보고 싶어서”다. 좀 더 구체적으론 “내 안의 소리에 충실히 귀 기울이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염원에서 ‘반란’을 꾀하게 됐다.

“내 삶의 어느 순간 그런 성찰이 왔을 때 결단이 가장 중요하다. 이 자유로움은 처음 느껴본 대단한 쾌감이지만 동시에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매 순간 두렵기도 한 게 솔직한 심정이다. 두 아들에겐 ‘아버지처럼 저렇게 살 수도 있겠구나’란 모델을 보여준 것 자체가 교육이라 생각한다.”

“학문 벽 넘어 글쓰기로 대중과 소통하는 것이 내 역할”

 

교수직을 버리고 제주에 내려간 이왈종(오른쪽) 화백의 작업실에서. 이 화백의 ‘물건’은 서귀포 정착을 도와준 지인이 선물한 면도기로, 그는 17년째 이를 애용하고 있다. 일종의 감사의 기억이다.gabapentin withdrawal message board gabapentin withdrawal message board gabapentin withdrawal message board
교수직을 버리고 제주에 내려간 이왈종(오른쪽) 화백의 작업실에서. 이 화백의 ‘물건’은 서귀포 정착을 도와준 지인이 선물한 면도기로, 그는 17년째 이를 애용하고 있다. 일종의 감사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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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노는 만큼 성공한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등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최근 펴내 역시 잘나가고 있는 ‘남자의 물건’(21세기북스)에선 남성 리더 10인의 애장품을 통해 그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역분석을 시도했다. 가령, 전설적인 축구선수 차범근의 인생 절정기는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을 때보다 가족과 함께 도란도란 아침을 먹을 때였다. 그래서 그를 대변하는 물건은 독일 아침식사에서의 필수품 달걀받침대다. 배우 안성기의 스케치북 첫 장에 있는 정면을 응시하는 자화상에선 강한 자의식과 교만할 정도의 자신감을 본다.

그 자신의 ‘물건’은 만년필이다. 60여 개를 소장하고도 계속 갈구하는 만년필에 대한 그의 집착은 올해 여든셋인, 아직도 정정한 그의 아버지의 손을 떠나지 않았던 은색 파카 만년필에서 비롯됐다. 중학교 때 매료당한 아버지의 만년필은 아버지를 진정 좋아하면서도 “네” 소리조차 정확히 못 하고 얼버무릴 정도로 어려운 ‘사이’에서 아버지와의 연결 고리를 상징한다. 더구나 만년필은 “임자 없는 개”처럼 아무데나 뒹굴어 다니는 볼펜과 달리 “길들이는” 과정과 그에 따른 재미가 쏠쏠하다. 그래서 “내 물건”이란 만족감을 선사한다.

여성의 심리를 주로 다뤄온 출판시장에서 이처럼 그 자신을 포함한 ‘한국 남성’의 존재를 파고드는 그의 분석은 참신하다. 여기에 “젠장”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책갈피에 스며드는 특유의 구어체 문장은 저자를 마주하고 책을 읽는다는 친근감을 준다. 

“문체? 나도 쉬지 않고 꾸준히 연습한 결과다. 내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속도감이다. 읽는 사람이 내 생각의 속도를 따라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지루해지지 않는다. 보통 생각을 아주 많이, 오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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