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슬부슬 봄비가 내리던 3월 23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오금공원. 구립 가락본동어린이집에 다니는 17명의 아이들이 모였다. ‘물총새’란 별칭의 김보라 교사가 묻자 “산책이오”라는 답이 돌아왔다. 형형색색의 우비로 무장한 아이들은 오전 10시 30분부터 한 시간 넘게 이야기숲까지 걸었다. 젖은 흙을 만지며 물길을 만들고, 대지를 뚫고 나온 새싹을 관찰했다. 곤충을 찾는 아이부터 나뭇잎 컵에 빗물과 진흙을 섞어 “코코아예요”라며 건네는 아이, 꽃눈이 터진 광경을 유심히 보는 아이까지 다양했다.
아이들은 대피소에서 점심을 먹은 후 교사가 읽어주는 동화에 푹 빠져들었다. 편백나무로 지은 통나무집 대피소에는 동화책과 그림책이 100여 권 있었다. 입춘 전날 아이들이 써서 붙인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란 글씨가 이채로웠다.
윤영란 원장은 “부적응 아이들이 숲에 가더니 확 바뀌었다”고 했다. 산만한 행동은 줄고 탐구력과 관찰력, 창의성은 높아졌다. 윤 원장은 “만3∼5세 통합 연령으로 운영돼 ‘형이 가르치고, 동생은 배우다보니’ 성격도 원만해지더라”며 “아이들이 잘 먹고 잘 자니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며 웃었다. 가락본동 어린이집엔 전국 구립 중 처음으로 숲반이 개설됐다.
송파구가 서울아산병원에 의뢰한 연구 결과도 비슷했다. 숲유치원생과 일반 유치원생을 7개월간 비교 분석한 결과 공격성은 줄고 사회성은 향상되며 수면 습관이 좋아졌다. 연구진은 “숲유치원생 부모들의 양육 스트레스가 더 적은 경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특히 숲반 교사들은 장애아들의 변화가 뚜렷하다고 전했다. 근육 발달이 늦어 계단을 오를 때마다 주저앉던 한 아이가 잘 걷게 됐고, 감각장애를 겪던 한 아이도 오감을 자극하는 숲에 다니더니 언어구사력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아들 예준군을 보낸 현하영(39·서울 송파구)씨는 “숲유치원에 보낸 지 보름밖에 안 됐는데 처음에는 너무 피곤해하더니 아주 건강해졌다”며 “언어 표현이 늘고 짜증은 덜 낸다. 예전엔 놀이터에서 못 타는 기구가 있으면 우물쭈물하던 아이가 대담하게 잘 논다”며 흐뭇해했다. 안전 문제에 대해 윤 원장은 “숲에서 다쳐 병원에 간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