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는 ‘나’, 행복해질 수 없다”
‘뇌과학’으로 남녀관계 성찰… “‘공감’이 사람을 살린다”
여성의 사랑이 문명사회의 시작
“‘관계’ 쪽 특성을 보자면 남자가 여자에게 질 수밖에 없다. 그쪽 뇌가 발달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일 테고, 지금처럼 여성이 두각을 나타내며 자기주장이 세지는 상황에선 자신이 왜 그 때문에 힘들어하는지조차 모른다. 남성들은 여성에게 공격당한다는 피해의식이 암암리에 있는데, 논리 싸움에선 부부싸움 하나만 봐도 여성에게 못 당하니 나름대로 일리 있는 심리다. 그래서 일부 남성들은 마초라기보다는 ‘약한 남자’일 뿐이다.”
괴테는 ‘파우스트’ 말미에 “영원히 여성적인 것들이 우리를 천상으로 인도한다”고 고백한다. 그와 마주해 얘기를 들으며 묘하게 겹쳐지는 부분이다.
“공룡이 멸망하던 6500만 년 전, 포유류의 외형은 ‘쥐’에 불과했고 그 외형은 1억5000만 년간 변하지 않았지만, 미래 인간의 탄생을 가능케 한 것은 몸 속 내부 변화였다. 파충류나 공룡처럼 알을 낳아 자연 부화시키는 것과 포유류처럼 어미 뱃속에서 안전하게 키우는 것, 이것은 비교할 수 없는 생존의 차이를 초래했다. 그래서 모성이 인간사회를 만들었다 할 수 있는 것이고, 이 인간이 거대 조직을 만들고 집단적 지능을 발휘해 현대문명을 만들어 간 것이다. 여성의 사랑이 인간사회 기초 문명의 시작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여성과 남성은 그토록 오랜 세월 서로 갈등하며 괴로워할까. 역시 그의 주장에 따르면 남녀 간 뇌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남성은 인간 간의 교류를 촉진시키는 호르몬 옥시토신(실험 결과 옥시토신을 많이 투입할수록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는 빈도가 증가하는데, 이는 상대의 감정을 알고 싶다는 무언의 보디랭귀지다)이 여성보다 훨씬 적다. 남성들은 옅은 관계만 만들 뿐 여성들처럼 진한 관계를 만들지 못한다. 전쟁부터 사회활동에 이르기까지 경쟁적으로 상대방의 생명이든 무엇이든 간에 빼앗아와 가족에게 전해주는 것이 남성의 운명이니 냉혹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반면 여성은 사랑하는 사람한테 제일 많은 상처를 받는다. 관계를 통해 정서적 안정을 찾는데, 사람이 밥을 먹어야 살 듯 여성들은 사랑이나 긍정적 정서가 있어야 마음의 평정을 유지한다. 여성이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남성에게는 밥을 굶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상처를 남성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똑똑한 요즘 여성들은 옥시토신 수치가 높거나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남성을 행복 보장 차원에서 자신의 파트너로 선택할 가능성이 높단다.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우리나라 남성들은 유교적 가부장 사회의 본의 아닌 희생자가 아닌가 하는.
“예로부터 남자가 말이 많으면 안 된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등 우리 사회는 ‘소통’을 차단해왔다. 동양적 문화의 후진성이라기보다는 당시 그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만 문명을 발달시켜 왔다고 추측할 수 있다. 힘없고 자신 없으면 나와 외부를 자꾸 차단하는 쇄국정책을 써서 자신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인위적으로 강화해갈 수밖에 없다.”
그는 덧붙여서 가까운 미래, 여성들도 남성들처럼 무자비하고 냉정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다. 남녀 간 성역할의 경계가 점점 엷어지기 때문이다. 핵가족 혹은 출산 거부 등으로 육아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거나 직접 육아를 할 기회가 점점 줄어 든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 테러, 탄압 등 기존 남성들이 밟아온 전철을 되풀이할 것이라 보지는 않는다. “사람에 따라 여성성을 계속 지켜가거나 오히려 자신의 행복에 더 집중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좋은 남편’ 착각 뒤의 불편한 진실
여성에 대한 그의 이해는 물론 학문과 임상경험과 비례하겠지만, 가장 가까운 그 근처의 ‘너’, 바로 아내에게서 비롯됐다. 그의 아내는 전형적인 전업주부다. 아내와의 관계가 편해진 것은, 그 자신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10여 년 사이다. 그 전에는 “말도 못 하게 어려웠다”고 토로한다. ‘아내에게 되게 잘했다’는 스스로의 착각 때문이었다. 일에 파묻혀 휴일도 까먹기 일쑤인데도, 아내에게 크게 요구하는 것 없고, 까다롭지 않으며 상냥하고, 월급도 착실히 가져다주는 자신은 아버지 세대 기준에서 보면 ‘좋은 남편’이었다. 그래서 아내의 불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방송이나 현장에서 많은 여성들의 고민을 접하며 자신을 반추하게 됐고, 지금은 “아내와 관계가 좋을 때 가장 편안하다”는 고백을 한다.
“40~50년 전만 해도 여성들은 사랑이 없더라도 끼니만 굶지 않으면 됐다. 그러나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니 그 이상의 것, 행복해지는 것이 필요해졌다. 여성들의 항의를 남성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열심히 살고 있고 자신의 아버지보다는 훨씬 좋은 남자인데 왜 그렇게 자신을 괴롭히느냐는 것이다. 관계 개선에 대한 여성의 욕구 자체를 한가한 놀이쯤으로 여겼고 충돌이 불가피해지면서 아내와의 관계는 점점 벌어지게 된 것이다.”
죄가 있다면, 우리가 갑자기 잘살게 된 경제 부흥이라는 것이 한국 남성들에 대한 그의 변호다. 서구 남성들도 100년 전엔 한국 남성들과 똑같았지만, 100년에 걸쳐 이혼도 당하는 진통을 겪다 보니 “달라졌다”는 것. 100여 년의 변화를 20여 년의 발전 속도로 따라잡으려다 보니 세계 최고의 이혼율이란 부작용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서구사회 여성인권의 발전은 100여 년에 걸쳐 진행됐지만, 우리 사회는 8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됐다. 거기다 여성과 남성의 관계 역시 사회의 급속한 발전 속도에 휘말려 들어갔다. 삶의 질 욕구는 나날이 높아져 가는데 이를 뒷받침해줄 관계 형성의 시간은 너무 짧고, 결국 이로 인해 삶의 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되는 것이다.”
남성이 저지르기 쉬운 대표적인 우매함, 즉 “사랑한다는 것을 꼭 말로 해야 하느냐”는 반문에 대한 그의 일침에 기자도 함께 무릎을 쳤다. 남성들은 ‘대충’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 ‘사랑한다’는 말, 소리를 내어 말하는 ‘행위’가 있어야 뇌에서 애착 호르몬이 나온단다. 그런데 이런 말과 스킨십 등을 하게 하는 옥시토신이 남성에게는 적어 행복감이 떨어지게 마련이라는 것.
가족시간 보장해주는 사회시스템을
그는 남녀 관계를 비롯한 지금의 모든 인간관계의 위기를 희로애락 등 다양한 감정을 조종하는 대뇌변연계의 위기에서 찾는다. 한 개체와 다른 개체와의 접촉 결과로 각각의 변연계에서 동시에 애착 호르몬이 분비돼 ‘통’하게 되는데, 이를 변연계 공명이라 한다. 이를 통해 애착 관계가 형성되면 혈연을 뛰어넘는 ‘소중한 너’가 ‘나’에게 생기게 된다는 것.
“예전엔 엄마의 모성애적 사랑에 더해 대가족의 끈끈한 정 등 여러 곳에서 애착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지금은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이 핵가족에 한정돼 있어 여기서 약간 비뚤어지면 곧바로 변연계 위기로 직결될 수 있다. 좀 쉽게 말하면, 사랑을 받아 안정적인 뇌 상태가 유지돼야 하는데 이게 잘 안 되는 거다. 그래서 고독하고 우울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핵가족은 가족의 무게를 최소한도로 덜어주는 편리함도 있지만 인간의 생존 환경을 너무나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이 관계 치유 전문가로서 그의 진단이다. 어린이집, 학교 등 그 어떤 시설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보육 시스템이 될 수 없고, 성적 지상주의 탓에 부모는 아이에게 공부 감독관이 돼버리고 아이에게 집은 공장이 돼버리는 부조리, 그로 인한 불가피한 상처. 조금이라도 성적이 떨어지면 TV부터 없애자고 아이를 윽박지르는 가정에서 서로 간의 따뜻한 정서적 교류는 자리를 점점 잃어간다. 그는 이런 가정의 한계를 오히려 사회시스템 속에서 극복하고 대안을 찾는 데 눈을 돌렸다. 그리고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그가 2000년부터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민간 대안학교 ‘도시속작은학교’ 얘기다.
“아이들의 입학 때와 졸업할 때의 엄청난 변화에 매료돼 여전히 즐겁게 관여하고 있다. 처음엔 ‘어른은 하나도 안 믿습니다’라고 선언하듯 무표정한 아이들이 졸업식장에선 밝게 웃고 떠든다. ‘언제 이렇게 성숙해졌지’ 할 정도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줄도 안다. 비결은 바로 선생님들의 사랑이다. 공부나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