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경남 밀양에 다녀왔다. 동행인이 많았다. 서울에서는 고속버스 2대가 내려갔다. 밀양에선 765㎸(킬로볼트) 초고압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이 치열하다. 주민들은 지난 7년 동안 반대 운동을 벌였지만, 공사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어르신들은 아픈 다리를 끌고 가파른 산을 기어올라 벌목을 막기 위해 나무를 끌어안고 소리치며 울었다. “차라리 내 다리를 잘라라”며 전기톱을 막아보았지만, 이미 베어진 나무들이 많다. 포클레인은 평생을 소중하게 가꿔온 논과 밭을 마구 파헤쳤다. 결국 공사는 70대 농부의 분신자살 이후에야 멈췄다. 이치우 어르신의 극적인 희생이 있고 난 뒤에야 무심했던 많은 이들도 뒤늦게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난 17일 전국 각지에서 ‘탈핵 희망버스’에 몸을 싣고 밀양으로 모여든 이들은 이치우 어르신의 추모 문화제에 참석했다. 수도권은 물론 강원에서 제주까지 전국에서 모인 이들과 지역 주민 등 행사 참석자가 1000여 명에 달했다. 다음날은 화악산에 올라 송전탑을 세우기 위해 벌목한 그 자리에 어린 나무들을 다시 심었다.

이치우 어르신의 분신 이후 송전탑 공사가 잠시 중단됐지만, 많은 어르신들은 아직 산 속에 지은 움막에서 지내고 계셨다. 언제 다시 공사가 재개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이들은 어르신들의 처절한 경험담을 들으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

오랜 싸움 속에 어르신들은 에너지 전문가가 다 되셨다. 핵발전소와 송전탑의 관계, 잘못된 전력정책과 전자파의 피해 등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계셨다. 그리고 아는 만큼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고 계셨다. 윤여림(73) 할아버지는 송전탑 반대 운동 과정에서 고소·고발을 가장 많이 당한 분인데, 최근 자택 지붕 위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셨다. 핵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도, 송전탑도 필요없다는 의지에서 하신 일일 것이다.

“한전과 정부는 전기를 싸게 공급해 불필요하게 많이 쓰도록 만들어놓고 나서 전기가 부족하다며 발전소를 또 짓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당장 전기요금이 싸면 좋겠지만, 그것이 미래에 불행을 가져온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요금이 싸니까 다들 쓰지만, 나는 전기장판도 안 쓴다.”

외롭게 싸워온 밀양의 어르신들은 외지에서 온 많은 동지들 덕분에 힘이 난다고 좋아하셨다. 한 여대생은 “어르신들은 많이 배운 사람들이 도와달라고 하시지만, 제가 그동안 배운 것이 무엇이었는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밀양이라고 하면 영화 ‘밀양’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텐데, 지금 그곳에선 더 극적인 또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이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릴 수 있을지 여부는 우리들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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