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못 끝낸 숙제, 이젠 내 손으로”
김근태 고문 생전부터 정치 입문 권유받아…도봉갑 후보로 공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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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효식 / 여성신문 사진기자 yesphoto@womennews.co.kr
“한명숙 대표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우리가 도와줄게’라고 격려하셔서 전략공천을 받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설마 1호가 될 줄은 몰랐다. 평생 민주주의자로서의 외길, 그리고 대통합론에 열정을 바쳤던 남편 김근태 고문의 유지를 당이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였다. 지금은 정말 이 총선을 압도적으로 잘 치르고 새로운 정치인생을 잘 펼쳐서 후에 하늘나라에 가서 남편에게 칭찬받고 싶다는 마음이 절실하다.”

지난 2월 22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민주통합당 전략공천 1호(서울 도봉갑)로 화려한 정치 입문식을 치른 인재근(59·사진) 한반도재단 이사장. 그의 창1동에 위치한 사무실 곳곳엔 아직도 고 김근태 고문의 흔적이 역력했다. 18대 총선 당시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가 직접 만들어 선물한 “달리는” 김 고문의 석고상이 자리한 테이블 사이로 그와 마주했다. 10여 년 전에도 바로 이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때는 소탈한 진심이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정치인의 아내였지만 지금은 바로 그 자신이 정치인으로서의 첫걸음을 막 떼기 시작했다. 뭐가 달라졌을까.

“실제적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생활이 달라진 것은 없다. 남편을 대신해 정치 일선에 나선 여성들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다면, ‘누구의 마누라’라는 공통점은 피할 수 없겠지만, 늘 남편의 곁에서 같은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같은 지향점을 바라보며 함께 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국민의정부를 기점으로 주요 관심사가 민주화에서 여성·아동·노인 등 소외계층의 인권과 복지문제에 더 집중하게 됐다는 것이 변화라면 변화다.”

그가 총선 출마를 결심한 것은 의외로 김 고문의 49재 직후인 최근이었다. 김 고문의 병상을 찾은 한명숙 대표가 “이제 김 고문 좀 쉬게 하고 당신이 나서라”고 정치 입문을 권유하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급작스럽게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는 것. 이후 김 고문의 “우리에게 두 번의 중요한 기회(총선, 대선)가 오는 2012년을 꼭 점령해야 한다. 적극 참여하고 승리해야 새로운 권력을 통해 시대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생전 유언과, 김 고문 타계 후 지역위원회 위원장과 고문 등 당원들이 그를 후보로 추대한다는 서명을 먼저 중앙당에 올려 당의 부담을 덜어준 것이 그의 결단을 이끌어냈다. 사실 남편을 비롯해 그를 아는 지인들은 일찌감치 ‘야전사령관’으로서의 그의 정치적 자질을 높이 평가해왔다(그는 전 세계에 군사독재정권의 고문을 폭로, 김 고문과 함께 로버트케네디인권상을 수상했고,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초대 총무,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 등으로 80년대 민주화 흐름을 주도했다). “선후배들이 여태까지 왜 정치에 나서지 않느냐고 화를 많이 내 남편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였다. “남편이 더 큰 사람이 될 거라 확신했기에 그 밑거름이 되려고 힘썼지 전면에 나서서 휘저을 생각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1~2년 전부터 남편과 함께 따로, 또 같이 정치를 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서 이를 남편에게 얘기하면서 가능성을 열어두기는 했다”며 이번 정치 입문을 “슬픈 기회”라 표현했다.

이미 그는 후보 수준을 넘어선 행보를 시작했다. 내리 3선의 남편을 도와 지역구를 관리하면서 지역 현황과 민심을 파악해온 그가 ‘급선무’로 꼽은 것은 지역 내 주공아파트 17~19단지 500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 바로 옆에서 추진되고 있는 동부간선도로 확장 작업이다. 이를 지하도로로 만들어야만 심각한 교통체증과 그로 인한 소음과 공해 등의 주민고통을 줄일 수 있는데, 문제는 정부와 서울시가 각각 절반씩 3000억원의 공사 비용을 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출마를 결정한 직후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 서울시가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확증’을 위해 시장과 함께 사진도 찍었다. 또 대형 극장, 대형 백화점 하나 없는 문화 사각지대에 전 서울 시민들이 찾아오고 싶어 하는 1만5000명 수용 규모의 대형 공연장을 만들고 싶다. 근본적으론 “도봉구로 이사 오면 망한 것 아니냐”는 지역 편견에 시달리는 주민들의 마음에 “서민이 정말 살기 좋은 곳”이란 자부심을 심어주고 싶다. “변명의 여지는 없지만, 남편이 미처 다 하지 못한 지역 발전의 몫”이다.

지금도 정치인 김근태를 규정하는 실례로 꼽히는 대표적인 것은 2002년 대선 경선 당시의 돈 봉투 양심 고백과 후보 자진 사퇴다. 결단에 앞서 김 고문이 이를 그에게 의논했을 때 그는 “고백하면 깨끗한 정치인으로 역사에 남겠지만 지금은 부메랑으로 역풍 맞을 거다”라는 조언을 했다. 최근 새누리당을 휩쓴 돈 봉투 사건으로 김 고문의 선구자적 역할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는 그가 정치권에 간절히 바라는 것은 야권연대다.

“남편은 죽기 직전까지 민주진보세력을 통합하려는 노력을 다했다. 열심히 사람들을 만나면서 ‘시간이 없는데 빨리 합치지 않는다’며 굉장히 괴로워했고, 그 때문에 아프기까지 했다. 그래서 말했다. 그만큼 노력했으면 됐고, 그 다음은 하나님께 맡기라고. 이제 내가 정치 일선에 서게 되니 중앙당과 진보정당의 협상 결렬 소식이 들릴 때마다 너무나 속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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