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와 일부 언론의 자성이 필요하다

지난 한 주 가장 핫이슈는 뭐였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강용석 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박주신 씨가 병무청에 제출한 자기공명영상(MRI)이 본인 것이 맞다는 검사 결과가 나오면서 ‘강용석 파문’은 일단락 됐죠. 지난 2월14일 무소속 강용석 의원이 “병무청에 제출된 MRI는 제3자의 것”이라며 MRI를 공개해 논란이 됐으니까 정확히 8일만에 ‘강용석쇼’가 끝난 셈입니다. 강용석의 의혹제기가 사실무근으로 결론 났으니, 그래서 사건이 매듭지어졌으니 이제 끝난 걸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기에는 사건이 너무 심각했고 그리고 한 개인에 대한 폭력에 가까운 테러가 지나쳤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번 파문은 강용석 개인이 아닌 몰지각한 의료계와 보수언론의 합작품 이번 ‘강용석 병역비리쇼’는 무분별한 폭로전에 따른 사회적 혼란, 마녀사냥식 인신공격의 폐해를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사적 비밀인 의료기록을 여과 없이 들춰내며 의혹을 제기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묻지마 폭로’로 인해 개인의 권리가 얼마나 심각히 침해당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강용석 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지만 논란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사실 강용석 의원의 국회의원 잔여 임기는 3개월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의원직 사퇴가 현실적으로 큰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더군다나 강 의원은 오는 4·11 총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돼 의원직 사퇴 선언이 ‘꼼수’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논란은 한석주 세브란스병원 교수가 감사원 홈페이지에 “강 의원 주장이 사실이라고 확신한다”는 글을 올려 논란을 증폭시켰습니다. 게다가 전국의사총연합도 “MRI의 주인공은 비만체형의 30~40대로 20대일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의견을 밝혀 강 의원의 주장에 힘을 실었습니다. 한 마디로 의료계가 불필요한 논란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얘기입니다. 기초 사실조차 확인하지 않은 데다, 다양한 체형에 대한 가능성을 배제한 채 섣불리 단정적인 의견을 밝힘으로써 혼란을 부추긴 겁니다. 일부 언론의 무분별한 확대보도도 이번 사건을 불필요하게 키웠습니다. 지난 2월22일 동아일보는 박주신 씨에게 진단서를 발급한 혜민병원 의사 김모씨가 MRI 사진과 주신씨 신체의 일치여부에 의구심을 밝혔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김씨는 자신이 말한 내용과 전혀 다른 내용이라고 반박해 오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기본적인 사실 확인조차 안 된 무책임한 폭로를 비판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확대재생산시킨 셈이죠. 어찌됐든 분명한 건, 의혹제기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다는 겁니다. 그럼 당연히 사과나 정정보도가 따라야겠죠. 하지만 동아는 2월23일자 1면에서 <“박원순 아들이 낸 MRI, 본인 것 맞다”>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정정보도는 물론이고 최소한의 유감도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강용석 병역비리쇼’는 이렇듯 ‘강용석과 아이들’이 ‘합작’하면서 파문이 커졌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커진 파문이 강용석의 의원직 사퇴로 끝나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박주신씨가 병무청에 제한 MRI사진을 어떻게 강 의원이 입수할 수 있었는 지 여부입니다. ‘제2의 강용석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MRI를 입수할 수 있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로 좁혀지는데요, 당시 검사를 진행했던 병원과 박씨가 MRI 사진을 제출했던 병무청입니다. 만약 병원이나 병원 관계자를 통해서 강 의원이 사진을 입수했다면 의료법 위반이 됩니다. 현행의료법상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종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의료 기록을 열람하게 하거나 사본을 내주는 행위는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병무청을 통해 입수했을 경우에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법률을 어긴 것이 됩니다. 어찌됐든 두 가지 모두 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시민사회진영에서 이처럼 무분별한 폭로를 막기 위해 제도적 방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특히 이번 기회에 무차별적 폭로를 막기 위해 면책특권을 누리는 현역 정치인들에 제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강하게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물론 공직자에 대한 의혹은 마땅히 제기할 수 있고 검증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대상이 그 가족이고, 출처도 밝히지 않은 MRI 등 관련 신상 정보까지 털어내는 것은 명백한 사생활 침해죠. 그리고 범죄행위입니다. 무엇보다 강용석 의원의 경우 건전한 비판을 위한 의혹 제기가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흠집내기를 통해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려는 측면이 강했거든요. 이렇게 상대를 비방할 목적으로 하는 폭로 같은 경우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을 국회가 속히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2의 강용석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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