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과 분노의 시대, 그래도 희망 에너지가 이깁니다”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남긴 근원적 질문에 답한 ‘잊혀진 질문’ 출간해 큰 반향

그는 자신의 책에서 “현실은 바꿀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을 보는 눈은 바꿀 수 있다”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스키의 말을 인용했다. 그러면서 악조건과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키는 ‘긍정’의 힘을 열정적으로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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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동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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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효식 / 여성신문 사진기자 yesphoto@womennews.co.kr
밀리언셀러가 된 자기계발서 ‘무지개 원리’ 이후 새해 들어 또다시 서점가에서 주목받고 있는 ‘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할 잊혀진 질문’(명진출판)의 저자 차동엽(54·사진) 신부. 그는 스스로를 “흔들리지 않는 희망의 광신도”라 부른다. 어찌 보면 파격적이고 대담한 발언이다.

2월 20일 그가 소장으로 있는 경기 김포의 ‘미래사목연구소’에서 그와 마주했다. 그는 자신의 책 제목 ‘가슴을 다시 뛰게 할’과 ‘잊혀진’ 사이의 간극에 대해 “개념적으로 용어적으로 언어화돼 있진 않지만 잠재의식 속에 항상 있는 물음이고 생계 언저리에 같이 던져지는 물음”이라며 “사후 종교 세계뿐만 아니라 지금 바로 이 순간 ‘내가 왜 사나, 내 인생이 어디로 가나’에 대한 절실하고 본능적인 물음”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대기업 회장에서부터 주부, 학생에 이르기까지 무의식적으로, 그러나 공통으로 안고 있는 숙제거리라고 말한다.

25년 만에 서랍 속에서 나온 ‘보물 질문’

1987년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타계 직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책의 집필 과정은 소설처럼 드라마틱하다. 종교인은 아니었지만 병중이라 죽음 앞에 필연적 두려움을 느꼈던 이 회장은 “열려 있는” 상태에서 어떤 종교를 택할지 타진 중이었다고 한다. 그러는 과정 중 가톨릭 쪽으로 쏠려 당시 절두산성당의 박희봉 신부와 이를 토로하다 형이상학의 대가인 정희채 신부를 지목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는 의사를 표했다. 이에 정 신부는 우선 질문부터 보내달라 요청했고 병중의 이 회장은 비서에게 40여 개의 질문을 정신없이 쏟아내 메모하게 했다가 이를 다시 24개로 정리했다. 그러나 7월부터 연락을 취했던 정 신부와 이 회장의 만남은 병세 악화와 함께 몇 번의 연기 끝에 11월 이 회장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결국 불발됐다.

“책이 나오기까지 지금 돌이켜보니 ‘아, 이건 한 다리 한 다리 극적 연결고리가 기가 막힌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오래전 이병철 회장이 던진 질문이지만 지금 이 시대를 위해 때맞춰 서랍에서 나온 질문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정희채 신부가 답은 못 했어도 유의미한 문서라는 생각에 서랍에 넣고 있다가 20여 년 후 서강대 석좌교수 당시 손병두 이사장에게 이 회장의 질문지를 보여줬고, 손 이사장은 이 회장의 질문이면서 동시에 모든 경제인의 질문이기도 하다’며 ‘이 질문은 보물’이라며 감탄했다. 그는 딱 두 차례 이 질문을 공개했는데, 한 번은 평신도를 대표해 전국 주교 회의에서였고, 또 한 번은 바로 내게 보여준 것이다. 질문들은 내 품에서 1년여를 있다가 6개월여의 기간을 거쳐 책으로 엮였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떤 물음이 던져지면 본능적으로 그 질문이 무의식에서 발효되면서 작동하기 시작하기에 질문지가 내 손에 들어온 순간 이미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한 셈이다.”

이 회장은 어떤 질문을 던졌을까. 사실 그의 질문은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인간이나 생물도 진화의 산물 아닌가, 신이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의 죽음을 주었는가, 신은 왜 악인을 만들었는가, 부자는 악인인가, 지구의 종말은 언제 오는가 등 일부를 제외하곤 누구나 던질 수 있는 물음이다. 이 중 차 신부가 가장 답하기 어려웠던 질문은 바로 ‘고통’에 관한 것이었다.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답이 있어도 설득이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고통’의 문제가 바로 그렇다. 처절한 고통의 중심에 있는 사람을 위로해주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모자라는 정보는 지식으로 채울 수 있으나 우리의 고통은 바로 실존을 건드리는 문제다. 위로와 용기를 준다 해도 고통의 당사자에겐 미화에 그칠 수 있다. 엊그제도 인터넷에서 연극인 손숙씨 얘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다. 갚기엔 역부족인 남편의 빚더미에 떠밀려 딸 셋을 두고도 매일 자살을 생각했다는데, 누가 무슨 말로 위로해줄 수 있었겠는가. ‘빚 안 갚아도 돼요, 어떻게든 살아서 최선을 다해 행복해져야 해요’라는 경제 개념을 허물어뜨리는 위로, 이것이 바로 쉽게 말하면 종교의 영역이다.” 

고통, 피하려고만 해선 답이 안 나온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초등 4학년 때부터 지게로 연탄 배달을 해야 했던 궁핍함, 공고에서 갖은 노력 끝에 서울대 공대 입학에 성공했으나 B형 간염에 난타당한 육신 등 “고생으로 치자면 나도 빠지지 않는다”는 그가 역설하는 고통의 순기능은 그래서 매력적이다.

“단순한 예로, 고통의 감각이 없다면 동사나 화재로 다치는 사람이 속출할 것이다. 이처럼 고통은 사람을 위험과 파괴로부터 지켜준다. 박지성 선수의 옹이 발바닥, 발레리나 강수진의 붕대 발가락 등 고통으로 인한 단련의 힘 역시 크다. 도스토옙스키나 고흐에서처럼 고통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위대한 정신적 성장을 가져오고, 우리로 하여금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게 해준다. 그래서 감히 말하고 싶다. 고통을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도 고통을 이기는 한 방법이라고. 독일의 시인 에리히 캐스트너도 인간의 숙명을 ‘요람과 무덤 사이에는 고통이 있었다’고 군더더기 없이 요약하지 않았는가.

그는 ‘모래시계’ 세대다. 대학 4학년 때 5·18 광주민주항쟁으로 폐교령이 내려져 정릉의 한 수도원에 들어가 성서 중 예언서의 강의를 듣다 신앙의 사회적 책임을 깨닫게 됐다. 그는 “심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제로 물리적으로도 몸이 마구 뜨거워졌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그리고 해군 학사장교 1년차 여름에 사제가 되기로 결단했다. 그 언저리엔 할머니 때부터 집안에 흐르고 있는 신앙의 역사, 영적 기운이 있었다고 그는 짐작한다.

“이 시대 2040의 사회로부터 받은 실존적 상처가 너무 깊다. 독재시대에 태어나 음울하게 성장하다 청소년기에 야심 차게 공부하려 하니 IMF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가족 해체까지 경험했다. 간신히 대학을 졸업한 지금 세대 역시 글로벌 위기로 사회 진출의 길이 막혀있는 상태고. 다들 ‘수동적’ 피해자로 시대의 상처를 온몸에 안고 성장했다. 기득권층은 더욱더 자신의 것을 안 내놓으려 움켜잡고, 한편에선 아무 것도 주어진 것 없는 박탈감에 시달리니 분노밖에 자랄 게 있겠는가. 이게 지금 우리 사회 삶의 분위기다. 그러나 그럴수록 억압과 시련에서 탈출한 성격의 출애굽 정신, 즉 엑소더스의 영성을 강조하고 싶다. 내 안의 잠재력을 이와 연결시키면 인내심도 자라고 버티기도 잘 하고, 또 기회도 잘 잡게 된다고 확신한다. 사실 예수님은 어떻게 보면 세리, 창녀, 죄인 등 패잔병을 이끌고 일거리를 준 사회적 기업가의 효시로 볼 수 있다. 이들 루저에게 사기를 북돋워 용기와 삶의 자긍심을 불어넣어 주셨다. 그런 메시지로 자기를 무장하고 사는 사람은 이런 혼란과 불안의 시대에도 밑바닥에 있다는 것이 창피하지 않을 것이며 또 그를 치고 올라오는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 살릴 길은 생명존중과 배려의 인권교육

그는 독일어권에서 유학(오스트리아 빈 대학교 대학원 사목신학 박사)하면서 종교와 사회 각 분야가 합리적으로 분화된 80점 정도 수준의 사회를 체험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 대화의 룰이 부재하고 거칠고 광폭한 소통이 난무하는 데 한계를 느낀다고 토로한다. “일례로, ‘나꼼수’가 지금은 선풍적으로 인기 있지만 나중엔 그보다 더한 강도로 나꼼수를 잡는 무언가가 나타날 수도 있다. 충격 방식으론 절대 우리 사회에 치유를 가져다 줄 수 없다”는 것. “유독 우리만 괴롭다는 것은 ‘착시’ 현상이다. 미국이나 일본도 따지고 보면 우리보다 나을 것이 없다.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던 시절에도 희망을 가지고 산 사람이 많다. 그래서 어찌 보면 ‘속고 있는’ 현실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긍정적인 사회 분위기와 언어가 굉장히 중요하다. ‘안 된다’는 말을 자꾸 퍼뜨리면 사회가 그 ‘쥐약’을 먹고 다 죽게 마련이다. ‘할 수 있다, 된다’의 언어를 널리 퍼지게 하는 것이 절실하다.”

그가 희망의 최종 목표로 제시하는 것은 생명존중과 배려의 문화다.

“살아있는 동안 이걸 보는 게 꿈이다. 이게 되면 경제 선진국은 물론 인권과 문화 선진국, 동방의 등불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 최고의 숙제인 셈이다. 홍익인간의 이념, 잔인하게 다른 나라를 침략해본 적이 없는 역사를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이 부분에서 큰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이걸 살릴 수 있는 프로젝트로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어떤 이해관계에도 흔들리지 않고 추진할 수 있는 50년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핵심은 유치원부터 시작하는 생명존중에 바탕을 둔 인권교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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