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신문이 아예 대놓고 ‘미친 기름 값’이라는 제목을 뽑았다. 요즘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전국 평균 2000원에 육박해서 사상 최고치를 위협하고 있다. 해당 기사가 나온 13일자에 ‘정유업계의 사상 최대 실적’이라는 기사도 눈에 띈다. 4대 정유업체의 작년 매출액을 다 합쳐보니 무려 200조원가량이다. 이 두 기사를 보면서 분통을 터뜨리는 분들이 많지 않았을까. 특히 차량으로 먹고 사시는 분들이 느낄 박탈감이 떠오른다.

얼핏 보면 둘 사이에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 기름 값이 오르는 것은 마진이 줄어든 주유소의 자구책에서 비롯됐고 작년에 정유업계의 실적이 좋았던 것은 유례 없는 수출 호황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소매업주인 주유소와 수출대기업인 정유업계가 각자 나름 노력해 온 자연스런 결과로 해석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석유에 얽힌 가격과 수익 결정 구조를 보면 우리는 정유업계의 책임을 강화해야 함을 알 수 있다. 몇 가지 사실을 되새겨보자.

우선 정유업계는 담합을 통해 도매가격을 독점적으로 결정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도매가가 떨어져야 소매가도 떨어질 수 있다. 정부가 폭등하는 기름 값을 잡기 위해 펼친 대표적인 정책은 이른바 ‘알뜰주유소’ 정책이다. 경쟁을 통해 기름 값 하락을 유도하겠다는 것인데, 정유업계에 대한 압박은 전제되지 않았다. 시장을 독점한 4대 정유업체가 매년 담합을 통해 도매가를 결정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는 시늉을 보이긴 하지만 실효성은 없다. 정유업체는 돌아가면서 담합 사실을 자진 신고하는데 이른바 ‘자진신고자 감면제’를 이용해 과징금을 면제받는 수법을 사용한다.

둘째로, 정유업계는 원유 가격이 상승해도 생각만큼 부담스럽지 않다.

한국의 정유제품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예컨대 수송용 연료는 세계 최고의 환경 기준을 자랑한다. 이런 경쟁력은 세계 6위의 설비능력과 수출규모로 증명된다.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로 선진국들이 휘청하고 선진국들의 정유시설이 노후화됨에 따라 석유제품의 수출 전망은 한마디로 ‘장밋빛’ 그 자체다. 원유 가격이 상승한다 해도 수출이 워낙 호황이다 보니 정유업계는 크게 걱정할 바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원유 수입량의 상당 부분은 정유업체들에 의해 그대로 수출된다. 원유 수입량의 약 4분의 1은 그대로 수출된다(석유제품 수출금액은 원유 수입액의 약 2분의 1). 그렇다면 한국의 원유 도입 원가는 상당 부분 정유업체의 수출량이 결정하는 것이 아닐까. 최소한 국제 유가 급등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충격을 일정하게 흡수해 주는 책임 정도는 져 주어야 한다고 본다.

주유소와 국민이 기름 값 폭등에 근심이 늘어가도 정유업계는 언제나 국제 유가에 그 책임을 돌리고 있다. 정유업계는 유가 급등의 부담을 사회에 전가시킬 수 있는 구조를 지배하고 있다. 이런 엄연한 사실에 대해 어떻게 답을 할 것인가.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