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지도 크지도 않은 남자의 목소리가 이상하리만치 섬뜩하다. 이 ‘권유’의 주체는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마수를 의미하는 하나의 손만이 상징적으로 드러날 뿐이다. 남자의 목소리와 손짓은 “나의 꿈은 인정받는 가수가, 훌륭한 연기자가,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배우가 되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여성 연예인 지망생들의 목을 조인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 배포한 여성 연예인의 인권 현실을 담은 애니메이션 ‘나의 꿈은’의 한 장면이다.
‘나의 꿈은’은 대다수의 여성 연예인과 연예인 지망생들이 꿈을 좇아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성형수술·노예계약·성접대 강요 등의 인권침해로 좌절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작품이 나오게 된 것은 2009년 여배우 장자연 사건 때문이다. 자살한 여배우가 남긴 유서에서 드러난 연예인 지망생에 대한 성 상납과 술 접대 강요 등의 인권유린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관련 법 제정 논의를 촉발시키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인권위는 여성 연기자 및 지망생 35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여성 연기자, 연예산업 관계자 등 27명에 대한 심층면접을 진행했다.
“기획사 대표가 ‘남자를 알아야 된다’ 이러면서 모텔로 끌고 갔어요. 왜 그러시냐고 그랬더니 이쪽 일을 하려면 니가 아직 세상을 더 알아야 되고 남자도 알아야 되고….”(연기자, 20대 중반)
“너 짝눈이다, 눈 풀렸다, 조금만 더 손대자 자꾸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요. 주로 회사(기획사) 사람들이에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연기자, 20대 초반)
당시 실태조사에서 여성 연예인들이 밝힌 경험담이다. 연기자의 45.3%가 술 시중 요구를, 60.2%가 성 접대 제의를 받았고, 다이어트와 성형수술을 권유받은 것은 각각 72.3%, 58.7%에 달한다는 구체적인 수치 등 그간 소문으로만 떠돌던 행태가 실체화된 것이다. 그리고 이 실태조사에서 나타난 다양한 인권침해 사례를 바탕으로 ‘나의 꿈은’을 제작한 것이다.
영화의 연출은 인권애니메이션 ‘별별이야기’에 참여하며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이애림 감독이 맡았다. 그는 “여성 연예인 지망생의 현실을 전달하되 이것이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임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제작 과정에는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한예조), 여성민우회 여성 연예인 인권지원센터 등이 자문에 참여해 내실을 더했다.
5분 분량으로 완성된 이 애니메이션은 CD로 제작돼 전국 136개 방송연예 관련 대학·대학원 학과는 물론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한예조), 한국매니지먼트협회 등에 배포됐다. 이후에는 연예인을 지망하는 청소년들에게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