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짓는 남자 (1)

 

 

느릿느릿 올라가던 골목길이 어느 순간 갑자기 가팔라졌다. 성옥은 늘 그랬듯이 걸음을 멈추고 한껏 치켜 올라붙은 골목길을 쳐다보았다. 간판을 내달거나 문짝에 써 붙인 가게들도 여기서는 끝이었다. 우리문방구, 안성기름집, 평택철물, 명품수선, 양평야채, 이천쌀집, 우리 농산물, 희망약국, 언니떡볶이, 다복부동산 따위의 간판이 있던 골목이 정말 있었나? 성옥은 언제나 여기쯤에서 신기루를 만난 듯, 혼란을 느끼곤 했다.

지금도 그랬다. 걸음을 멈춘 채 길을 잘못 든 나그네처럼 뒤를 돌아보고 언덕바지를 올려다보았다. 어느 순간 마음에 가득 찬 망연함이 가시지 않았다.

압록강을 건넌 뒤, 수풀 우거진 강둑에 서서 우연히 바라본 건너편, 그곳은 그저 캄캄한 먹물이었다. 저 어둠 속에 사람이 산다거나 내가 그곳에서 방금 건너왔다는 생각까지는 못했다. 그저 그곳은 캄캄할 뿐이었다.

지금 성옥의 망연함은, 한밤중의 압록강가, 그 수풀에서 조국을 바라보던 무연함과 이어져 있을지 몰랐다.

성옥은 비켜 설 필요도 없는데 길가에 바짝 붙어서 위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트렁크는 아스팔트를 긁는 바퀴 소리가 거슬려 손에 들었다. 갈 때와는 달리 더 든 것이라곤 오키나와 알사탕 몇 봉지 그리고 Y에게 줄 정종이 전부인데 어깨가 처졌다. 어떤 때는 한달음에 뛰어오르던 언덕을 성옥은 몇 번이나 쉬면서 올라갔다. 성옥의 건너편에서 한 여자가 담벼락과 전신주와 문짝에 전단지를 바쁘게 붙이고 있었다. 아, 성옥의 입 안에서 작은 신음이 울렸다.     

북에서 왔습니까?

성옥은 그 여자를 피하듯이 고개를 푹 숙이고 걸으면서 속으로는 이런 말을 했다. 북에서 왔습니까? 온 지 얼마나 됐습니까? 식당이 벌이가 더 낫습니다. 

그러나 성옥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 여자와 멀어졌다. 주위에 눈길 한 번 던지지 않고 오로지 전단지 붙이는 일에만 몰두하는 여자. 당에서 충성심을 요구할 때보다 더 자발적이어서 열성이 느껴지는 걸까? 저 여자가 당원이었다면, 당원이 아니었다면… 성옥은 이런 상상을 하는 자신이 짜증스러웠다. 

곧 성옥은 골목의 맨 위쪽에 지어진 사 층짜리 다세대 건물 앞에 이르렀다. 건물은 잠든 것 같았다. 모든 세대의 출입구는 앞쪽이지만 성옥의 반지하방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는 뒤편이었다.  

방은 비좁은 시멘트 계단 다섯 개 아래에 있었다. 성옥은 높이가 고르지 않고 바닥도 고르지 않은 계단을 잠깐 바라보았다. 계단 모서리에 여러 가지의 마른 잎사귀들이 도망자들처럼 한 데 모여 있었다. 살겠다고, 성옥은 낙엽을 보면서 생각했다. 

현관문은 삐걱대며 열렸다. 문 안쪽은 어둡고 썰렁했다. 바깥보다 더 춥고 을씨년스런 안쪽. 방안의 썰렁함이 섬뜩해서 도망가고 싶어지던 경험. 각인된 느낌 중 하나였다. 내 집이 생겼는데 내 집에서 드디어 외롭다는 걸 확인해야 하는 배반의 감정이 들었던 날은 하나원에서 나온 첫날이었다. 도우미는 친절하고 따뜻했다. 몇 시간 만에 대한민국 관공서의 모든 절차를 끝내고 자신의 집 열쇠로 현관문을 열었다. 필요할 땐 언제나 연락하라던 그들이 돌아간 뒤에, 하지만 성옥은 맨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곳에서의 집은 언제나 그랬다. 어두운 밤, 일터에서 돌아와 현관을 열고 들어가면 불을 켤 수 없었다. 어둠이 더 밝게 느껴졌다. 이런 감정은 성옥이만 느끼는 건 아니었다. 한국에 가면 아파트도 준다더라, 방에서 손가락 하나 대면 더운 물 찬물 다 나오고 집안에 변소와 목욕탕이 있다는 말들은 활활 타는 희망이었다.

성옥은 이제 그런 시절을 추억하지 않았다. 아파트를 반납하고 학교 근처에 월세방을 구해 들 땐 새로운 희망 때문이었다. 스스로 살아야 한다는 것,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없다는 것, 그래서 스스로 그려보고 그것을 구체화하기 위해 움직였다.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고 자기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도 자기 자신뿐이다… 성옥은 자신에게 주체적 삶을 요구하고 그래야 하는 곳이 저쪽이 아니라 이쪽인 게 우스웠다. 당과 인민이 하나라고 하는 건 ‘아무렇지 않을 때’였으니.   

성옥은 트렁크를 뉘여놓고 배낭을 벗은 뒤에 잠깐 멍했다. 비어있는 책상의자에 앉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불과 몇 시간 전, 비행기의 동체가 둔탁한 몸을 땅에 내리는 순간, 성옥은 이제 됐다, 이렇게 마음이 푹 놓였었다. 안전한 곳으로 왔다는 그 편안함. 그러나 그 뒤는 허전했다. 근로동원에 나가거나 봄가을 농촌전투에 나가 한 계절을 보낸 뒤에 돌아오는 집은 여기 없었다.  

“엄마!”

“아부지!”

“오빠!”

성옥은 문밖에서 이렇게 소리쳐 가족을 부르고 싶었다. 코에 익은 냄새, 귀에 익은 목소리, 눈에 익은 풍경들. 그래야 고향일 것이었다. ㄱㅗ ㅎㅑㅇ. 성옥의 마음에서 고향이 쪼개졌다. 이때 성옥은 문자 수신음을 들었다. 악몽에서 깨는 느낌으로 성옥은 문자를 확인했다.

잘 다녀왔나요? 지금쯤 집일 것 같아서. Y.

성옥은 문자를 읽었다. 아, 이 사람. 왜 잊고 있었지? 

성옥은 울컥 목이 메는 기분이었다. 문자가 지워진 뒤에도 다시 확인을 눌러 글자들을 들여다보았다. 잘 다녀왔나요? 지금쯤 집일 것 같아서. Y.

성옥의 가슴이 출렁거렸다. 출렁거리는 파도 사이로 더운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성옥은 머지않아 먹물이 된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그리고 현관 문턱의 단추를 눌렀다. 갑자기 명랑해진 방안이 성옥에게 인사했다. 책상 위의 컴퓨터와 책들. 의자. 작은 식탁과 그 위의 머그잔. 문 한 짝의 옷장. 신발장. 매트와 이불.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성옥 올림.

성옥은 글자에 제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보냈다. 스스로 만족했다. 어둡고 무겁던 몸이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성옥은 화장실의 거울 앞에 섰다. 하지만 지금 문자를 확인한 Y는 쓸쓸했다. 성옥의 진심과 Y의 진심 사이엔 황량한 벌판 하나가 있었다. 달려가면 한달음에 닿을 것 같은 거리이긴 해도 좀체 사라지지 않는, 벌판이었다.

Y가 회전의자를 돌려 제도판이 열려있는 모니터로부터 등을 돌리고 창밖을 내다보는 동안 성옥은 샤워를 하고 화장을 했다. Y가 김일성, 사회주의, 식량난, 전체주의, 반공, 빨갱이, 김정일 따위의 단어로 조합되는 북한을 생각하는 동안 성옥은 옷을 입고 손가방을 어깨에 메고 집을 나섰다.

언덕을 내려가서 찻길로 나서는데 성옥의 빠른 걸음으로 15분. 그리고 더욱 속도를 내서 걸으면 학교를 거쳐 알바를 하는 대학로의 식당 건물까지 1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건물 4층에 Y가 일하는 건축설계사무소가 있었다. Y는 가끔 노부가로 술을 마시러 왔다. 저녁만 먹을 때도 있었다. 성옥이 그를 만난 것도 ‘노부가’에서였다. 알바 중에 성옥이가 가장 고참이었다. 한 번 일자리를 구하면 잘릴 때까지 일했다.

성옥은 다른 날과 달리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대학로에 내렸다. 대학로의 골목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붐볐다. 인왕산의 노을이 낙산공원까지 번져 있었다. 

“저녁을 같이 합시다.”

성옥은 노부가 입구에서 Y의 문자를 받았다.

“네. 저 노부가에 왔어요. 오늘 일은 안 해요.”

“그럼 ‘그리스’ 알죠? 그곳에 가 있어요. 곧 갈테니.”

Y가 알려준 그리스 레스토랑은 이곳 끝에서 다시 오른편으로 돌면 모퉁이에 있었다. 소박하고 단아하고 대부분 한적했다.

성옥은 창가에 앉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젊고 활기가 넘쳤고 자유로워 보였다.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고 느낄 수 있는 정감들이었다.

이게 전부는 아니야, 성옥은 생각했다. 셋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아주머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 아이들은 고향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성옥이가 대학로를 좋아하는 것은 어쩜 이곳에는 그곳이 없기 때문인지 몰랐다.

Y는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문을 밀고 들어왔다. 그는 한눈에 성옥이 앉은 자리를 알아보고 맞은편에 앉았다. 성옥은 그가 걸어오는 동안, 그가 맞은편 의자에 앉는 동안 그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Y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옥이도 그를 흉내냈다. 

“뭔가 달라졌는데?”

Y가 말했다. 그리고 성옥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성옥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뭘까?” 그가 다시 중얼거렸다. 그리고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성옥의 얼굴에 옅은 슬픔이 그림자처럼 어른대다가 사라졌다. 그가 탁자 위에 자신의 오른 손을 올려놓았다. 성옥이 물끄러미 그 손을 바라보다가 제 손을 내밀어 맞잡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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