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중국집에서 주문을 많이 받아놓았는데, 배달원이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음식을 만들어놓고도 배고픈 사람에게 전할 수가 없다. 희화화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전력 사정이 딱 이 모양이다.

서울과 수도권, 도시에 전력을 대량으로 공급하기 위해 지역에 대형 핵발전소를 짓고 국토를 가로지르는 초고압 송전탑과 송전선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인데, 수년째 갈등만 계속될 뿐 송전탑과 송전선로 건설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급기야 지난 1월 16일 경남 밀양에서는 초고압 송전선로 공사에 항의하며 한 농민이 분신자살하는 안타까운 사건까지 발생했다.

고인은 고향을 지키며 농사를 지어온 우애 좋은 70대 농민 삼형제 중 한 분이다. 송전선로 설치를 반대하는 시위에 수년째 참여해 오셨고, 사망 당일은 한전 측이 용역을 동원해 동생의 논을 굴삭기로 파헤치며 공사를 강행하자 이를 저지하며 앞장서 싸웠다고 한다.

송전탑, 송전선로 반대운동은 지역 이기주의로 매도되곤 한다. 그러나 단지 자신의 집과 논이 발전소와 도시 사이에 있다는 이유로, 자신의 동의도 없이 집 근처에 40층짜리 아파트 높이의 송전탑이 세워지고 머리 위로 송전선로가 지나가도 참아야 하는가. 게다가 밀양에 건설될 예정인 765㎸(킬로볼트) 송전탑과 송전선로는 현재의 고압선보다 4배나 강력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초고압 시설이다. 전자파 피해는 또 얼마나 무시무시할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손 안의 작은 휴대전화 전자파도 발암 물질로 규정된 마당에 초고압 송전선로 아래 누가 살고 싶어 하겠는가.

핵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도시로 대량 공급하기 위해 필요한 고압 송전탑과 송전선로 때문에 밀양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현재와 같은 전력의 대량생산, 대량소비 체제가 유지된다면, 그래서 대규모 신규 핵발전소, 초고압 송전탑과 송전선로 건설이 계속 추진돼야 한다면, 이처럼 불행한 사건과 사고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쓰지도 않는 전기를 생산하고 전달하기 위해 발전소를 옆에 끼고 송전탑과 송전선로 아래에서 살도록 강요받고 있는 피해 주민들의 고통을 모른 척 해선 안 된다. 더 이상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함께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절약과 효율 제고를 최우선으로 추진하고, 지역에서 생산된 전기를 해당 지역에서 소비하도록 하는 분산형 전원을 확대하는 등 에너지 정책의 근본적인 변화와 국민적 실천이 시급하다. 아끼면 발전소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송전탑과 송전선로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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