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현대사 속에서 인권운동의 산증인이었고, 수많은 후배 법조인들의 등불이던 이돈명 변호사가 우리 곁을 떠나신 지 벌써 일년이 되었습니다. 초짜 변호사에게 그분은 거인이었습니다. 첫 출근길의 조심스럽고 두려웠던 마음이 그분의 얼굴 한 가득 담긴 웃음에 녹아내리고 금방 기분좋은 콩닥콩닥 설렘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분의 사무실은 늘 각처에서 보내온 책들로 가득했고 식사를 같이 하거나 안부를 묻기 위해 들르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근처 음식점에 함께 점심 먹으러 가면 주인장이 그분께만 특별히 잡곡밥을 준비해주곤 했습니다. 어느 자리에 가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진심어린 존경심이나 애정을 표하곤 했습니다.

술 한잔 기울이며 나누어주던 지나온 삶에 대한 회상은 여느 소설 이상으로 흥미진진했습니다. 후배들과 영화도 함께 보러 가기도 하고 사회적 이슈가 불거질 때면 후배들의 생각을 물어보시며 자연스레 올바른 태도나 입장으로 이끌어주시곤 했습니다. 그분의 삶 자체가 지금껏 빼앗기거나 무시된 인간의 권리를 회복하고 만들어내는 작업의 연속이었기에 곁에만 있어도 절로 감흥이 생겨나는 듯 했습니다.

이미 은퇴해 법정에 함께 할 일이 없으리라 여겼지만 천운으로 송두율 교수 재판 중에 우뚝 서계신 그분을 볼 수 있었습니다.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힘을 보태주시려고 그저 아무 말없이 변호인석 맨 앞자리에 앉아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말과 글로 표현되는 경지를 훌쩍 넘어선 최고의 변론을 하셨습니다. 엄혹한 현실 속에서 치열하게 시대의 아픔을 겪어내며 켜켜이 쌓아온 인간애를 온몸으로 역설했습니다.

고 이돈명 변호사의 인권운동에 대한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제정한 ‘천주교인권위원회 이돈명인권상’의 첫 수상자로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가 선정됐습니다. 청소년 인권활동가들은 약 6개월 동안 거리로 나가 서울 시민들을 직접 만나 9만7000여 명의 주민발의 서명을 받아냈으며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의회 앞에서 농성을 하면서까지 어렵게 통과시켰습니다.

공교롭게도 수상자 발표가 있던 지난 9일 서울시교육감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이대영 부교육감이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에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재의를 요청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이미 헌법에서 천명하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학생들의 입장에서 재조명하고 있을 뿐입니다.

교육 주체가 나서서 제정을 추진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재의를 요청한다는 것은 거꾸로 가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너무나 잘 살아오신 그분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상을 받았으니 그 여세를 몰아 좋은 결실을 얻으리라 믿습니다. 이제 그분의 뜻을 받들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한발 앞으로 나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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