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합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시대착오적인 송년회

지난 주말 저녁, SBS <8뉴스>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잘 이해가 안 가는 리포트가 하나 있더군요. 송년회를 다룬 리포트였는데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 취업포털사이트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봤더니, 10명 중 7명이 송년회가 별로 즐겁지 않다고 대답했다. 송년회에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이다. 스트레스 1위는 ‘술’이었고 그 다음이 ‘돈’과 ‘다음 날 업무 부담’이었다. 즐거워야 할 송년회가 고역이 되고 있다.” 송년회가 많은 시기다 보니 저절로 눈길이 가더군요. 물론 최근 송년회를 다루는 언론보도가 천편일률적이라는 단점이 있긴 합니다만 ‘새로운 송년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의도는 긍정적으로 평가해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SBS의 2% 부족한 송년회 리포트 문제는 리포트 내용이었습니다. ‘즐거워야 할 송년회가 고역이 되고 있다’는 것의 사례로 든 것 중의 하나가 저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실제로 서울대학병원의 한 간호사는 송년회를 앞두고 노조에 탄원서를 보냈습니다. 송년행사를 앞두고 춤 배우기를 강요받고 있단 내용입니다. (서울대병원 간호원) : 짧은 옷 입고, 교수들 앞에서 춤을 추는 게 과연 내 장기를 보여주기만을 위한 건가. 너무 수치스럽다는 거죠. 왜 우리가 저렇게 해야 되나.” SBS는 “술 때문에, 남들의 시선 때문에, 그리고 잘 놀라는 ‘강요’ 때문에, 편안해야 할 송년회가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고 결론을 맺습니다. 편안해야 할 송년회가 스트레스가 되고 있는 문제점 - 이것은 SBS가 잘 지적했습니다만 ‘서울대병원’ 사례가 이런 범주에 포함되는 게 적절한가, 저는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여성 간호사로 하여금 짧은 옷 입고, 교수들 앞에서 춤을 추도록 하는 송년회”를 단순히 ‘스트레스를 주는 송년회’로 보기엔 사안이 너무 심각하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단합의 이름으로 열리는 ‘이상한 송년회’ 실제 ‘서울대병원 송년회 논란’은 이미 이달 초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면서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간단히 내용을 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서울대병원 수술부가 간호사들에게 연말 파티에서 댄스 공연을 준비하도록 강요했다며 노조가 문제를 제기해 논란이 일고 있다 … 한 간호사는 (노조에 보낸) 편지에 ‘12월8일 열리는 파티는 (간호사들의) 80% 정도가 하기 싫어하지만 교수들이 원해 감히 나서서 반대하지 못한다’며 ‘신규 간호사들은 밤 9시,10시가 되도록 춤 연습을 하고 (공연 당일) 억지로 이브닝 드레스를 입어야 해 너무 괴롭다’고 썼다 … 노조는 ‘의사는 군림하고 간호부 관리자들은 그런 상황을 지원해 결국 평간호사들만 희생하는 병폐가 다시 나타났다’며 ‘한 직종의 즐거움을 위해 다른 직원을 (춤을 추도록) 강요하는 것이 정상적인 조직문화인가’라고 따졌다.” (세계일보 12월5일 인터넷 판에서 인용) 서울대병원 측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내놓습니다. “간호사들만 억지로 장기자랑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구성원들이 골고루 참여한다. 병원의 화합을 도모하는 목적의 장기 자랑을 간호사들의 재롱잔치라고 평가하는 것은 편향된 시각이다.” 그러면서 예정대로 송년회 모임을 강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오늘이 12월12일이니 송년회는 이미 끝났을 겁니다. 송년회 전에는 ‘이런 저런’ 문제점을 지적하던 언론이 정작 송년회가 끝나고 난 후에는 전혀 보도를 하지 않더군요. 지난 10일 SBS <8뉴스>에서 잠깐 언급된 게 전부입니다. 뭐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서울대병원 측의 태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가 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전에 이 같은 논란이 제기됐음에도 서울대병원 측이 ‘전통과 화합’이라는 이유로 행사를 강행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적어도 그런 문제제기가 ‘여성’ 간호사에 의해 제기됐고 언론에까지 보도가 됐다면, 내부 논의를 통해 행사의 적절성을 따져보는 게 온당한 태도 아닐까요. 하지만 서울대병원 측은 “병원의 화합을 도모하는 목적의 장기 자랑을 간호사들의 재롱잔치라고 평가하는 것은 편향된 시각”이라며 오히려 불쾌해하는 태도마저 보였습니다. ‘SNS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가부장 문화’ 뭐 … 백 번을 양보해 서울대병원 측이 해명한 것처럼 ‘간호사들의 댄스공연’을 병원의 화합을 도모하는 목적의 장기 자랑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칩시다. 하지만 ‘여성’ 간호사 중 단 한 명이라도 ‘그런 장기자랑’을 불편해하고, 괴롭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폐지하는 게 온당합니다. 그런 불편과 괴로움을 다수(남성으로 추정되는)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는 이유로 강행한다면 그것은 ‘전통과 화합’이라는 이름으로 소수자에 행하는 폭력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사례가 서울대병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아직도 많은 기업이나 정부 조직에서 비슷한 사례들이 공공연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적인 예가 지난 8월말 발생한 관세청 개청기념 직원 체육대회 ‘사건’입니다. 당시 관세청은 개청기념 직원 체육대회에서 여직원 10여명으로 하여금 거의 강제적으로 치어리더 의상을 입고 선정적 춤을 춰 물의를 빚었습니다. 심지어 관세청 여직원 A씨는 지난 8월 해당 부서장에게 불려가 “개청기념 체육대회를 하려 하니 치어리더 의상을 입고 자극적인 춤을 추라”는 말을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부서장은 여 직원에게 “잘하면 좋은 데로 보내주겠다”는 말까지 해서 더욱 논란을 빚기도 했습니다. 상황이 이렇습니다.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21세기’니 ‘SNS 시대’니 하며 변화된 세상을 얘기하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문화’가 변하지 않은 채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아직도 바뀌어야 할 권위적·가부장적인 잔재가 많다는 얘기입니다. 문제는 그런 ‘조직 문화’를 비판하면서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가 대응하는 방식입니다. △‘조직 구성원들끼리의 화합 도모’를 이해 못하는 사람 △사회생활 잘 못하는 사람 △구성원들과의 소통과 화합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폄훼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입니다. ‘원만한 사회생활’ 속에 감춰진 소수자에 대한 폭력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저는 이렇게 묻고 싶더군요. ‘조직 구성원들끼리의 화합 도모’니, ‘원만한 사회생활’이니 운운하며 ‘성차별적인 행사’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화합을 방해하는 세력 아니냐고. 그런 분들에게 SBS <8뉴스>에서 언급된 서울대병원 ‘여성’ 간호사의 말을 다시 한번 들려주고 싶습니다. “짧은 옷 입고, 교수들 앞에서 춤을 추는 게 과연 내 장기를 보여주기만을 위한 건가. 너무 수치스럽다는 거죠. 왜 우리가 저렇게 해야 되나.”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혹시 지금 송년회에서 ‘전통과 화합’이라는 이름으로 소수자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건 아닌지요. 모두들 송년회로 바쁜 지금, 우리 모두 차분하게 ‘성찰의 시간’을 가지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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