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jpg

박시정(56)씨가 소설집 〈구름 사이에 무지개를〉을 펴내 문단에 조용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무성에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세계 여러 나라

를 돌아다녀야했던 그가 지난 3년간의 한국 체류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

가는 즈음에 마무리된 작품집이라 작가에게도 뜻깊은 출간이다.

‘사랑의 묘약’, ‘세개의 물방울’ 등 일련의 작품은 잔잔한 수채화 같

은 필치로 여성 사이의 자매애 그리고 아가페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다.

백호라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러 미국으로 온 주희. 그는 유학 떠난 애

인을 위해 자신의 꿈은 포기한 채 남자의 학비를 마련하고 희생하며 기다

림으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주희를 꺼리는 애인. 불안

한 주희는 자신의 모든 지위를 포기하고 어렵게 딴 간호사 자격으로 미

국으로 향한다.

그러나 남자는 종적을 감추고, 주희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불길한 예감

에 시달린다. 백방으로 찾아다니던 주희는 그와의 추억이 아련한 성당을

찾지만 거기서 목격하는 것은 백호와 그의 부유한 약혼녀. 주희는 혼절하

고 끝내 정신건강진료소에 입원한다. 이야기는 그런 주희를 상담치료하는

자원봉사자 미스 오와의 대화로 진행된다. 이를 통해 남자로 인한 사랑의

배반을 여성의 우정으로 치유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소설을 통해 원만한 인간관계의 완성을 추구하지만 번번히 실패하는 아

픔과 좌절, 이를 종교와 자매애로 극복해 가는 여성들을 그리고 싶었습니

다.

물론 같은 여성끼리라도 애정만은 아닌 경쟁의식과 같은 애증이 병존하

지만,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면 서로를 위해 자신을 조금씩 양보하고

맞추려는 자세를 발견하게 되죠. 저는 이것이 여성의 특성이라 생각합니

다.”

이런 그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 〈세개의 물방울〉이란 작품이

다. 이 작품에는 이혼하거나 별거 중인 친구 둘이 함께 생계를 꾸려나가

며 서로에 대해 적응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한편 이 작품에서는 작가가 경험했던 한국에서의 여성의 삶, 외국에서의

여성의 삶을 세세하게 보여준다. 한국의 남성중심의 가부장제에 길들여진

여성들이 양성평등이 비교적 잘 이루어진 미국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개인의 행복마저 위협당하는 비극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한국에서 남성의 부속물로 여겨지던 여성들이 미국에서 갑자기 주어진

평등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겨워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됩니다. 문화적 풍

토는 양성평등적이지만 그들 자신이나 가족의 사고방식은 가부장제에 얽

매이고 있기 때문이죠. 그럴 때 여성들은 공허함을 느끼고, 인생에 대한

희망마저 잃기 쉽습니다. 이것들을 같은 처지의 여성이 서로 이해하고 도

움을 줄 수 있으리라고 여깁니다.”

이국 문화와의 충돌이 빚는 여성들의 일상을 통해 인간관계의 회복과 소

박한 사랑을 담아낸 그의 작품은 ‘세계화’를 부르짖는 현재에 진정한

세계화는 제도나 문물의 개방만이 아닌 ‘인식의 대전환’이라는 메시지

를 섬세하고 진지하게 전한다.

<최이 부자 기자>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