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재앙과 삶의 참혹상 그려

이번 소설집의 전반적인 테마는 ‘도시’, 더 나아가 ‘재해로 가득한 도시’다. 작가는 들끓는 욕망으로 번쩍이는 도시의 전면을 드러내고 그것을 전복시키는 과감한 시도를 했다. 그 과정에서 문래, 강변북로, 광화문광장, 옥인동 등 구체적인 지명들을 언급함으로써 공포에 뚜렷한 원근감과 사실성도 덧입혔다.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죽음의 도로’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한 여성이 강변북로에서 자살을 감행하려다 실패하는 과정을 강박적으로 그려냈으며, 또 다른 단편 ‘문래에서’는 구제역을 소재 삼아 문명의 진보가 자초한 재앙을 건조하고 서늘한 문장으로 경고했다.

특히 작가는 ‘재해 그 이후’에도 주목해 사람들이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는 치유의 과정도 묘사했다. 부재를 단지 결핍이 아니라 애도를 통한 소통의 가능성으로 전환시키려는 작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문학평론가 백지연은 “문명의 재앙과 그것이 파괴한 삶의 참혹한 양태를 엄정한 눈길로 주시하는 강영숙 소설은 도시 속에 스며있는 개인의 실존적인 불안을 섬세하게 포착했다”며 “이는 현대인의 실존을 둘러싼 불안에 대해 깊은 공감을 환기시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