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제재할 강력한 규정 마련해야

정부가 저출산 해결을 위해 대기업의 직장보육시설 설치를 의무화했지만, 실제 국내 대기업 10곳 중 4곳은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정부는 대기업의 눈치를 보느라 보육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기업의 명단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 10월 31일 보건복지부가 직장보육시설 설치 현황 공개를 거부했다며 복지부의 비공개 결정을 취소해줄 것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경실련이 지난 6월 30일 ‘직장보육시설 의무 대상 사업장의 직장보육시설 설치’에 대한 이행 여부 현황을 공개해 줄 것을 복지부에 요청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국민의 재산 보호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비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실제 이낙연 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직장 내 어린이집을 갖춰야 하는 대기업 576곳 중 236곳이 어린이집을 설치하지 않았다. 기아자동차, 두산인프라코어, 현대제철 등 대형 중공업 기업의 지방 공장들도 포함돼 있었다.

현재 영유아보육법에 따르면 상시 근로자 500명 이상 또는 여성 근로자 300명 이상인 기업은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해야 한다. 공간이 부족하거나 안전사고 우려가 있다면 보육수당을 대신 지급하거나 위탁시설을 지정해 이용토록 해야 하지만 대기업 236곳은 이런 세 가지 의무 중 어떤 것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이런 배짱을 부릴 수 있는 것은 현행 실정법으로는 위반 사업장을 처벌할 수 있는 기준이 없어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임채민 복지부 장관은 직장보육시설 미이행 기업과 기관에 협조를 부탁하는 서신을 보냈다. 복지부 관계자는 “처벌규정이 없어 법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도 제재조치가 없다”며 “기업들의 자발적인 이행을 독려하기 위해 장관의 서한을 발송했다”고 설명했지만 실제로 편지 한 통으로 요지부동한 기업을 움직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경실련 관계자는 “직장보육시설 설치 미이행 사업장은 실정법을 위반한 것”이라며 “현행법상 이행 강제 방안이 없는데 실행 여부조차 공개되지 않는다면 대기업의 위법행위를 보호하려고 다수 국민의 권익을 외면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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