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작업은 대표적인 공공인류학
김은실: 20년 전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는데, 이렇게 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되니 정말 반갑다. 한국에서 선생님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Women Culture & Society’ 책은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학자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최근 한국어로 번역됐다. 70년대 미국의 여성인류학, 여성학 그리고 여성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책이고, 한국에서도 70~80년대 조혜정 교수를 비롯해 페미니스트 인류학자들 그리고 사회학자들에게 중요한 텍스트였다. 나도 한국에서 이 책과 ‘Toward an Anthropology of Women’이 미국 여성운동과 인류학에 끼친 큰 영향력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이 두 책은 사실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되는 젠더 개념을 확립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선생님 책이 70년대 미국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하다.
램피어: ‘Women Culture & Society’는 1974년 대학의 젊은 조교수들과 2명의 박사논문을 쓰는 대학원생 16명이 같이 쓴 책이다. 이 책에는 여성과 남성에게 다르게 배치되는 성역할의 구조, 여성성과 남성성에 다른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문화적 상징체계들을 비교문화적인 관점에서 연구한 다양한 사례가 제시돼 있다. 인류학자들만이 아니라 많은 여성들이 좋아한 책이고, 70년대 미국의 페미니즘 운동과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은실: 저자로서 이 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램피어: 1970년대는 인류학에 큰 변화가 일어난 시기다. 우리는 당시 미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던 실용적이고 공공적인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젠더 이슈는 이런 추세에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고, ‘Women Culture and Society’는 젠더와 여성학에 대해 직접 언급하는 최초의 인류학적 연구였다. 당시 굉장히 많이 팔렸고, 많은 여성이 읽었다. 나는 최근에 참여인류학 혹은 공공인류학(public anthropology)에 많은 관심을 갖는데, 페미니스트 작업은 대표적인 공공인류학이다.
‘목소리가 큰 시끄러운 사람’이 소송에서 이기다
김은실: 선생님이 어떻게 불리는지 궁금하다. 성차별로 브라운 대학을 소송해서 이긴 페미니스트라 불리나. 아니면 ‘Women Culture…’ 저자로 불리나.
램피어: 여전히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나를 만나면 그 책을 언급한다.
김은실: 1998년 미국의 인류학회는 선생님께 여성들을 위해 일한 공로를 치하하기 위해 ‘Squeaky Wheel’상을 수여했다. 상에 대해 설명해달라.
램피어: ‘Lamphere vs Brown’ 소송사건으로 사실 목소리가 큰 시끄러운 사람(Squeaky Wheel)이 됐다. 내가 미국에서 대학을 성차별로 고소한 최초의 사례는 아니다. 그러나 내가 유명해진 것은 집단소송을 했고, 또 이긴(consent decree) 최초의 사례라는 것이다. 1971년부터 여성 교수들이 성차별로 대학들을 고소했지만, 거의 이기지 못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데 1974년 5월 24일이었다. 당시 브라운 대학 인류학 과장인 필립 레이가 나에게 종신교수직을 받지 못할 것이고, 1년 후에 브라운을 떠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인류학과에는 6명의 남성 교수가 있었는데, 나의 종신교수직은 그들의 추천에 달려 있었다. 과장은 나에게 6명의 교수들의 의견이 갈리긴 하지만, 전체 평가는 내 수업이 형편없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 또 ‘Women Culture…’에 출판된 내 논문이 이론적으로 매우 취약한 논문으로 평가됐다고 했다. 종신교수직 거부가 결정됐을 때 나는 분노했다. 이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나는 과장인 레이 방을 떠날 때 떨고 있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총장을 비롯해 대학 내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려 했지만 모두 거절당했고, 유일한 여성 행정담당관이었던 사람에게 갔더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대학 구조 내에서 내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그래서 졸업식 날 과 행사가 끝나고 나서, 과장에게 변호사를 고용했고, 브라운 대학을 성차별로 고소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시끄러운 여성이 되는 순간이었다.
미국 사회 성차별을 비판하는 강의
브라운 대학에서의 마지막 1년은 나의 어려움을 대학의 고충위원회에 호소하는 데 보냈다. 그러나 고충위원회의 결론은 과의 결정에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고충위원회의 보고서는 브라운 법인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내 변호사는 1975년 3명의 다른 여성을 포함해 내 사건을 집단소송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소송을 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대학은 하나도 제공하지 않았고, 보지도 못하게 했다. 이때 판사가 자료를 볼 수 있게 해줬다. 우리는 대학 법률회사 사무실에서 인류학과의 과장인 필립 레이와 다른 테뉴어드 동료인 조지 힉스 사이에 교환된 편지를 발견했다. 그 편지를 통해 테뉴어를 받은 두 명의 남자 교수가 나의 종신교수직을 반대했고, 또 그들의 공모에 의해 종신교수직이 거부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의 강의에 대한 평가 역시 조지 힉스의 수업에서 내가 한 마거릿 미드에 대한 강의 평가였음이 드러났다.
그는 미국 사회의 성차별을 비판하는 나의 강의는 신뢰할 수 없고, 무책임한 강의라고 평가했다. 동시에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에는 여학생과 동료들 그리고 여성 친구들에 대한 성차별적이고 모독적인 언사들로 가득했다. 이 편지들은 우리의 집단소송에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했고, 나에게 아 ‘이랬구나’ 하는 깨달음의 순간을 주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조지 힉스가 나의 지지자이고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편지를 보냈고, 나의 종신교수직을 위한 추천서를 부탁했었다. 그는 ‘Women Culture…’에 있는 내 논문에 대해 “형편없고, 내가 분석하고 종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썼다. 그리고 과에서 투표가 없었음에도, 투표가 있었던 것처럼 조작을 했다.
당시 브라운 대학은 이미 이 소송 때문에 100만 달러나 썼다. 정말 큰돈이었다. 그리고 집단 소송이었기 때문에 관계된 4개의 과가 거의 업무 마비 상태였고, 대학은 이 사건 때문에 생기는 대학의 부정적인 이미지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당시 브라운 대학의 새 총장인 하워드 스웨어러(Howard Swearer)가 1977년 봄에 해결을 위한 대화를 제안해왔다. 그래서 4명의 원고를 개인적으로 만나 협상했고, 1977년 9월 사건을 해결(consent decree)했다.
지원 네트워크와 친구들의 도움
램피어: 나와 다른 두 여성 교수에게는 종신교수직을 제공했고, 한 여성에게는 현금으로 보상했다. 이 사건은 브라운 대학에 과거 성차별을 받았다고 느낀 여성들이 자신들이 본 손해를 보상받는 절차를 만들게 했고, 고용·테뉴어·승진과 관련된 감시를 할 있는 ‘Affirmative Action Monitoring Committee’를 만들게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이 1987년까지 100명의 여성과 57명의 종신직 여성 교수를 고용하겠다는 목표와 일정표를 제안하게 했다. 나는 1979년에 부교수로 브라운 대학의 인류학과로 돌아갔다.
김은실: 이 소송이 선생님의 인생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램피어: 이 사건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사실 두려웠고 무서웠다. 그러나 대학에서 나가게 되면 내 인생도 끝이라고 생각했다. 싸우는 것 외에 대안이 없었다. 나는 이 과정에서 두 가지를 배웠다. 첫째는 대학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제도를 변화시키는 것은 개인의 상황을 해결하는 것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변화를 만들어낸다. 둘째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원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과 친한 친구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종신교수직이 거부됐을 때 여러 번 나의 능력을 의심했다. 이럴 때 파트너인 피터 에반스와 친구들이 나의 자신감을 세워줬고, 내가 비판자들의 논리에 빠져들지 않게 해줬다. 사실 우리가 소송에서 이길 수 있었던 더 큰 요소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활기차게 부상하는 페미니스트 운동, 인류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인문학에 점점 증가하는 여성 박사들, 여성과 소수자들의 상황 개선을 위한 단계로서의 ‘affirmative action&rs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