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에는 정의가 살아 있다”

 

최영미 시인gabapentin withdrawal message board http://lensbyluca.com/withdrawal/message/board gabapentin withdrawal message board
최영미 시인
gabapentin withdrawal message board http://lensbyluca.com/withdrawal/message/board gabapentin withdrawal message board
“우리 사회에 정의(正義)가 있었다면 축구에 빠지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공을 넘겨주지 않는 ‘돼지와 여우들’(부조리한 사회·문화계 인사)과는 대조적으로, 축구장 안에서 펼쳐지는 육체의 언어는 구체적이고 솔직하다. 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50·사진)씨가 최근 축구 에세이 ‘공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이순출판사)를 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 등 전작에서도 도발적인 성 표현과 거침없는 사회비판으로 ‘문제적 시인’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던 그답게 축구의 매력에 대한 설명도 남다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K리그의 승부 조작 사건과 관련해서는 “관객이 보고 있거나 생중계를 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라며 “더구나 더러운 방법으로 승리한 쪽과 진정한 승자는 관객이 정확히 판가름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최영미 시인의 ‘축구앓이’는 이미 유명하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축구팬이 됐다는 그는, 국내외 축구 관련서를 통해 축구 정보를 ‘탐식’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대한축구협회로부터 한·일 월드컵 공식보고서 편집자문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시집과 소설책의 집필도 미루고 축구와 관련한 글을 썼을 정도로 축구에 빠져 살았다. 나에게 축구는 고통을 잠재우는 마약과도 같다. 지난 10년간 나를 지배했던 열정을 책으로 펴낸 것은, 나처럼 게임을 보며 아픔을 잊는 뜨거운 가슴들과 축구에 대한 사랑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에는 일간지에 연재하면서 호평을 받았던 유럽 축구 기행을 비롯해 지난 10년간 다양한 매체에 기고해온 월드컵 이야기와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한 K리그 관전기가 담겨 있다. 작가는 특유의 감수성과 해박한 지식으로 역사와 철학, 문화를 통해 축구를 읽는다. 경기의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선수 개개인의 역할을 정확히 간파하는 대목에서는 그의 축구 내공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올해 초 다녀온 맨체스터-볼턴- 바르셀로나-함부르크-보훔-로마를 잇는 여정에서 박지성, 이청용, 손흥민, 백승호, 정대세 등 유럽에서 활약하는 우리 선수들을 만나고 인터뷰한 내용은 책의 백미다.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성으로 기존 언론에서 볼 수 없었던 선수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

최 시인은 “다 말할 수 없는 우여곡절 끝에 선수들을 만났다”고 고충을 토로하면서도 “워낙 팬이었던 이청용 선수를 만난 순간은 가슴이 너무 뛰어 혼났고, 재일동포 출신으로 북한 국가대표인 정대세 선수를 만났을 때는 분단 현실의 산증인으로 그가 느꼈을 복잡한 감회를 느낄 수 있어 가슴 아팠다”며 당시의 감회에 빠져들었다.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 중인 박지성 선수. 최 시인은 박지성 선수에게 “만일 오늘 프로축구 선수이기를 그만두고 축구화를 벗는다면, 당신이 가장 먼저 하고픈 일은?”이라고 물었고, 박지성이 답한 “아무것도 안 하는 거다. 일을 하지 않고 노는 것”이라는 답을 “가장 멋진 답”으로 꼽았다.

그래서 최 시인에게도 ‘시인이기를 그만둔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고 되물어봤다. 대답이 걸작이다. “축구 감독이 되고 싶다”는 것. 그러면서 “이 책이 많이 팔리면 유럽으로 축구 유학을 갈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데뷔와 동시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떠오른 ‘신데렐라’. 더구나 시의 내용도 도발적이기에 세간의 입 도마에도 많이 올랐다. 170㎝ 늘씬한 몸매와 미모도 편견을 부추기는 데 한몫을 했다. 그러나 최 시인은 등단 후 꾸준히 한길로만 걸어온, 우리 사회에 얼마 되지 않는 전업시인이다.  

그는 “나는 병환 중인 부모님을 돌보는 평범한 장녀다. 20여 년을 부츠 하나 없이 살아왔고 지금도 2만2000원짜리 시계를 차고 다닌다고 하면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하며 “그간 아주 아주 많은 오해를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결국 나는 시인이니 시로 기억되겠다”고 담담히 말했다.

1994년 발표한 그의 대표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같은 해 발표된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와 함께 ‘서른 살 담론을 열었다’고 평가 받는다. 시인은 2005년 낸 시집 ‘돼지들에게’에서는 ‘서른아홉’이라는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잔치가 끝난’ 서른을 지나 ‘헛되지 않은 생의 의미를 깨달은’ 서른아홉의 나이를 지나온 시인은 이제 어느덧 쉰을 넘어섰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산다”며 “나에게 시는 평생의 친구이자 장난감이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남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도 시 쓰는 일을 멈추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전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