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여성정책사’ 칼럼을 마치며

한국에서 여성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여성가족부의 전신인 정무장관(제2)실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자는 1988년 2월 25일 노태우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발족한 제6공화국의 정무장관(제2)실에서 근무하면서 여성정책과 인연을 맺은 이래 공직생활의 대부분을 여성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행정 현장에서 보냈다.

‘에피소드 여성정책사’는 필자의 공무원으로서 개인적 경험을 역사의 흐름 속에서 에피소드 중심의 짤막한 토막 이야기로 엮어보고자 했다. 에피소드는 말 그대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이다. 그러한 에피소드는 때론 사소한 것일 수도 있고 가치 없는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엄연히 그때 그 시절 여성정책 현장의 애환과 환희를 담은 생생한 이야기인 것이다. 에피소드를 통해 여성정책의 역사를 숨 쉬게 하고 미래를 내다보고 싶었다. 

초창기 여성정책은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번듯한 국가정책으로 제대로 대접도 못 받으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취급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숱한 정책들이 개발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미친 짓거리니 무모한 도전이니 하는 조롱과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육·해·공군 사관학교에 여학생 입학을 허용해야 한다, 아내 구타 같은 가정폭력은 범죄로 다스려야 한다, 성매매 피해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 남성 중심의 호주제를 폐지해야 된다는 주장을 할 때마다 어김없이 정부 안팎에서는 정무장관(제2)실을 없애라, 여성부를 없애라는 이야기가 튀어 나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부는 여성가족부로 변모돼 건재하고 있다.

재미있는 일화도 많지만 지면의 제약으로 다 못 실었다. 초·중등 교과서의 내용이나 TV와 라디오 등 미디어의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해 여성 차별적 표현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화도 많다. 생리휴가 폐지 불발, 은행의 여행원제 폐지, 군 경력 가산점제 폐지에 얽힌 일화며, 남녀공학 추진, 모성보호 입법 추진 등에 얽힌 이야기도 많다. 북한의 여성과 통일에 대한 에피소드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여성 자원봉사 활성화 시책은 여성의 노동력을 무보수로 착취하려는 발상이라는 비난에 휩쓸리기도 했다.

뿌리 없는 정책은 없다. 아니 뿌리 깊은 정책일수록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여성정책은 뿌리 깊은 정책이다. 기존의 관습과 인식을 타파하고 새로운 사회규범을 만들어 여성의 일상과 일생에 변화와 발전을 가져다준다. 여성정책은 자유와 평등, 개발과 선진, 평화와 안전을 미래 비전으로 삼는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선 한국은 이제 국격에 맞게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고 의사결정 과정에 여성의 진출을 확대하는 것, 이 두 가지 당면 과제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글로벌 지구촌을 향해 국제협력을 강화하는 것도 새로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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