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의 왕언니, 원로는 거칠 것이 없어라
올해 여든 백발의 노장에겐 아이디어가 반짝반짝…‘정말 바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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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숙 살림이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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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기자
‘현역정신’으로 무장된 원로는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60년간 사회운동가로 환경, 여성, 정치, 공정무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쌓은 글로벌한 리더십 경험이 생기 넘치는 에너지로 뿜어 나오고 있었다. 그의 백발이 새삼 에너지의 원천처럼 보였다. 개인의 삶이 철저하게 역사와 사회라는 씨실과 날실로 직조될 수 있다는 걸 이해할 때 비로소 박영숙 선생의 80 평생과 거기서 다시 시작되는 새로운 꿈과 실험에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여성신문 23주년 창간 특집호 대담을 위해 박영숙 선생의 일터 (재)살림이를 찾았다.

-여성재단 일을 끝낸 이후 더욱 바쁘게 활동하시는 것 같습니다. 최근 각계각층의 여성들과 ‘살림정치 여성행동’이라는 여성정치운동의 연대를 만드셨지요.

“살림정치는 여성을 얼마나 국회에 더 들여보내느냐 하는 숫자의 차원을 넘어서서 여성이 주체가 되어 정치의 지형을 변화시키자는 겁니다. 정치란 원래 삶의 조건을 만드는 과정을 말하는 것인데, 지금의 정치는 힘의 논리, 권력에 대한 정쟁만 있을 뿐 국민의 삶을 돌보는 살림의 정치가 아닙니다. 여성들의 요구를 들어달라고 간청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스스로가 주도하는 새로운 형태의 여성 정치세력화 실험을 하고 있어요.” 

-‘살림’이란 말 속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습니까.

“원하든 원치 않든 진주가 조개 속에서 아픔을 겪고 생기듯이 여성들이 지난날 살아온 삶의 경험과 아픔을 통해 체득한 살려냄, 보살핌, 나눔의 가치가 바로 살림의 가치입니다. 오늘의 지속가능하지 않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여성의 자원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살림정치 여성행동에서 정당체제도 구상하시나요.

“정당을 꿈꿔보기는 하지만 아직은 먼 얘기고요. 살림정치를 할 수 있는 후보망을 갖추고 여성 정치인 배출을 적극적으로 하자는 생각이에요. 시민사회가 박원순 (서울시장 보선) 후보를 냈듯이 한 지역이라도 여성 후보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으로 모범적인 선거운동을 해서 국회의원을 배출해보자는 생각도 해봅니다.”

-여성운동에도 롱테일 시대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은 80%의 참여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여성운동에도 정치참여로 롱테일 시대가 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2008년 촛불 행렬에서 10대 소녀들, 유모차 엄마들, 하이힐 직장 여성들이 보여준 생활정치에 대한 갈망이 일궈낸 전례가 있지 않습니까.”

-여성운동 활동가들의 활동환경과 노후문제를 고민해주는 푸근한 선배이시지요.

“여성운동은 여성운동이 필요 없는 세상을 꿈꾸고 있지만 지금은 지속가능한 여성운동을 위해 절박한 문제입니다. 저도 60년간 여성활동가로 살았기 때문에 이들의 어려움에 연민을 느낍니다. 젊었을 때는 열정으로 시작했지만 생활인이 되고 보면 이것을 평생직으로 삼기에는 너무나 열악한 것이 현실입니다. 제도적으로나 사회인식에도 변화가 생겨야 하는데 오늘의 상황은 여성운동사상 최악의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구책이라도 마련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예를 들어 공조회 또는 협동조합 형태의 상호부조기구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움트게 된 것이지요. 선배 활동가 출신들이 최근 만든 ‘행복 궁리 모임’에서 좋은 안이 생기기를 기대해 봅니다. 1만 명의 활동가들이 힘을 합친다면 못 해낼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활동가들이 자신의 문제를 이슈화하는 일을 주저하고 있는 데서 늦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Asia Women Bridge 두런두런’이라 하셨던 가요? 아시아 여성을 돕기 위한 일도 시작하셨습니다.

“가난한 아시아 여성들을 돕기 위한 모임으로 지금 100명의 창립 회원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여성환경연대와 공정무역 활동을 하면서 아시아의 여성들이 50년대의 우리나라보다 더 험악하게 살고 있는 걸 목격하게 됐어요. 네팔의 10대 ‘미망인’들의 비참한 삶을 조명한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라도 단 몇 명이나마 도와야겠다 생각하던 중, 뜻밖에 얻어진 YWCA 지도자상 상금 2000만원으로 활동을 시작하기로 했어요.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에서의 작은 돈이 그곳에서는 크게 쓰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연말이면 늘 여성운동가들을 집으로 초대해 밥을 해주셨던 일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수십 명의 식사 준비를 수월하고 즐겁게 해내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남편 강의가 끝나고 손님들이 수십 명씩 몰려왔는데 그때는 대접을 콩나물밥으로 했어요. 지금도 길거리에서 머리가 하얀 신사가 인사를 하면서 ‘그때 콩나물밥 맛있었다’고 말하기도 해요. 남편이 나가는 걸 싫어하고 사람을 좋아해서 늘 집에서 손님을 수십 명씩 치렀어요. 그때 살림이 뭐 있나, 포대기로 아이 들쳐 없고 좁은 부엌에서 석유 풍롯불로 음식을 했지. 그런 걸 참 좋아하고 즐기면서 했어요. 체력이 달려서 이제는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것이 아쉬워요.”

-선생님 37세, 철학자 안병무 박사님이 47세 때 당시로선 정말 늦은 결혼을 하셨습니다. 안 박사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우리의 결혼은 남들이 얘기하는 운명적인 그런 건 아니었고, 난 존경을 했고, 지금도 그래요. 안 박사는 평생을 소신과 행동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한 사람이었어요. 어긋난 경우에도 변명이나 자기 합리화를 하는 일은 하지 않았어요. 결혼은 사람을 이기적으로 만든다는 데서 축복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서로 각자 하는 일을 존중하는 결혼 방정식을 만들어 지키면서 나는 그의 남다른 삶의 소신에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 노력했고 그는 나에게 좋은 삶의 멘토로서 지금도 나의 삶을 지배하고 있어요. 생활 면에서는 내일을 위해 쌀이나 연탄 같은 것을 비축하는 걸 아주 싫어했어요. 오늘 쓸 것만 있으면 되고 물욕을 가지면 안 된다는 거였죠. 다른 건 다 따라도 연탄을 매일매일 살 수는 없어서 그건 좀 어겼죠. 우리 집 가구들은 죄다 어디서 주워 와서 짝이 맞는 게 하나도 없어요.”

-사랑의친구들 바자회 때는 늘 어묵을 파시지요? 앞치마 두르고 말없이 어묵을 꼬치에 끼우시는 모습은 친근한 어머니의 모습이세요. 이희호 여사님과 함께 북한에 보낼 목도리를 뜨셨지요.

“김대중 전 대통령 돌아가신 후로 매일 동작동에 가시는 걸 보고 ‘지금 그럴 시간이 어디 있느냐?’면서, 우리 북한 아이들 추위를 덜어줄 수 있도록 모자를 뜨자고 제안했어요. 우린 뜨개질 선수잖아요. 나는 따뜻하고 실도 적게 들고 실용적인 목 토시를 500개 떴어요. 꽤 많이 떴지요. 즐기면서 하니까, 할 땐 몰랐는데 다 하고 나니 몸이 좀 아프더라고요. 북쪽에 아직 못 보냈는데 2000개 채워서 이번 겨울에 보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건강해보이시는데 비결이 있나요.

“특별한 비결은 없고 하느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일부러 운동하지 않고 주로 일을 하죠. 가사노동, 지하철, 버스 타면서 다리 운동하고, 집안 살림과 사무실 관리하면서 몸과 머리 운동 하고… 즐겁게 살고 그런 게 건강에 도움이 되나 봅니다.”

-책을 많이 읽으시던데, 요즘 읽으신 책 중에 어떤 책이 좋으셨나요.

“새벽 5시 일어나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오전시간에는 주로 책을 읽어요. 최근 ‘게임 체인지’ ‘진보집권플랜’ ‘블루스웨터’ ‘이기적 이타주의자’ ‘위 제네레이션’ 등을 읽었어요. 세상 돌아가는 트렌드를 알고, 앞으로 어떻게 세상이 바뀔지 책을 통해 알게 되고, 새로운 생각의 실마리를 얻게 됩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책을 읽고 공부하게 돼요.”

-여성신문이 23주년을 맞았습니다. 여성신문 독자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여성신문 고생 많이 했고, 우리 곁에 있어줘서 고맙지요. 여성들은 힘든 과정에서도 여성들의 발전에 기여해온 여성신문의 헌신에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여성계가 변화하는 것 이상으로 여성신문이 변화해 나가야 할 겁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공동의 문제로 인식하고 바로잡는 노력을 하는 것이 언론이 해야 할 일입니다. 일반 언론이 성인지성이 없는 한 여성신문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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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기자

박영숙 살림이재단 이사장은

1932년생. (재)살림이 이사장. 전남여고와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대한YWCA연합회 총무,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사무처장, 한국여성단체연합 부회장, 평화민주당 부총재 및 권한대행, 한국환경사회연구소 이사장, 사랑의친구들 총재,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 여성재단 이사장,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 미래포럼 이사장, 희망포럼 공동대표, 뉴패러다임포럼 고문, 페어트레이드코리아 이사를 지냈다.  저서로 ‘녹색을 심은 여인’ ‘지구를 살리는 대변혁’(역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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