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정무장관(제2)실은 한국여성발전 50년사 발간을 추진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50년사’에서 ‘사(史)’자는 붙이지 못하게 됐다. 전반적으로 내용에 대한 공식적인 감수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용 중에서 여성단체 활동 부분에 대해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여협)에서 강력하게 항의하는 바람에 ‘한국여성발전 50년’은 배포를 중지하고 그 부분만을 재집필하는 소동까지 일었다.

‘한국여성발전 50년’은 정무장관(제2)실이 야심차게 기획하고 한국여성개발원에 의뢰해 발간한 것으로 1945년 광복 이후 정부 수립기, 1950년대 전쟁 이후의 혼돈기를 거쳐 1960~1970년대 경제성장과 여성 역할의 확대, 1980년대 여성 관련 법·제도의 완비기 그리고 1990년대 세계화·지방화 시대의 여성에 이르기까지 교육, 경제활동, 가족 및 가정생활, 여성의 법적 지위, 정치참여, 사회활동 등을 담아냈다. 김영삼 대통령의 친필 휘호까지 받아 실었다. 그리고 배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터졌다. 배포된 ‘한국여성발전 50년’을 받아본 여협에서 항의를 해왔다. 여성과 사회활동 내용 중 여성단체 활동 부분이 균형적으로 기술돼 있지 않으니 수정하라는 것이었다. 민주화 과정에서 탄생해 아직 10년도 안 된 한국여성단체연합(여성연합)에 대한 기술이 지나치게 많고 이에 비해 1959년에 창설돼 36년이나 되는 역사를 가진 여협에 대한 기술은 아주 인색하다는 것이었다. 이를 제대로 감수하지 못한 정무장관(제2)실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었다.

정무장관(제2)실은 실무 선에서 사과하고 양해를 구했지만 여협의 항의는 누그러들지 않았다. 항의의 강도는 의외로 강했다. 여협은 즉각 배포를 중지하고 배포된 책은 전량 회수하고 이 부분을 재집필해 줄 것을 요청했다. 장관까지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김장숙 정무장관(제2)이 나서서 여협의 이해와 협조를 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배포된 책을 회수하기는 어렵다, 남은 배포는 중지하겠다, 재집필하도록 하겠다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졌다. 정무장관(제2)실은 여성개발원에 재집필을 요청했지만 여성개발원의 필진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새로운 필진을 찾아 집필을 의뢰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그 이듬해 발간된 ‘한국여성단체 활동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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