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는 “서울 강남의 사무실에 갔더니 장관을 지낸 손숙씨의 대표이사 명패부터 사진, 감사패까지 있어 믿었는데 일이 터진 다음 알아보니 손씨는 그만뒀다고 하더라”며 “피해자가 수백 명이고 최하 100만원부터 최고 400만원까지 냈다. 엄마 욕심에 딸 결혼 잘 시키려고 나섰다가 사기 당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결혼정보회사의 난립 속에 부실 경영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스타 마케팅’에 현혹돼 ‘묻지 마 가입’을 하는 여성들도 적지 않아 주의가 요구된다. 한국소비자원이 현재 피해 예방 주의보까지 발령한 상태다.
국내 결혼정보회사는 950여 곳, 업계 추산 시장 규모는 1000억원대다. 하지만 10년 이상 된 업체는 4∼5곳에 불과하다. 초기 3∼4년간 유명인을 영입하며 광고 공세를 하다 부도로 망한 업체도 부지기수다. 업계 1위 자리를 놓고 과장 광고 논란을 넘어 소송전도 잇따르고 있다.
가입비는 가히 살인적이다. 명문 여대를 졸업한 30세 여성 공모씨가 ‘빅3’ 중 A사에 문의한 결과 가입비가 174만9000원, 264만원, 495만원으로 등급별로 달랐다. B사는 최상위 등급인 VIP회원 가입비가 700만원, 상류층 결혼업체를 표방한 C사는 로열회원 가입비로 895만원을 받고 있다. 공씨는 “상담원이 키, 가족관계 등 개인 정보를 물으며 해당 등급에 가입을 권유했다. 여성에게 점수를 매기고 등급화한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씁쓸해했다.
일부 업체는 만혼의 딸을 둔 엄마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얄팍한 상술을 부리고 있다. 고교 교사 출신의 주부 박모(58·서울 사당동)씨는 “결혼 적령기인 딸 셋을 두고 있어 조바심이 나던 차에 결혼정보회사가 막내딸의 대학 졸업앨범에서 봤다며 집으로 계속 전화를 걸어왔다”며 “결국 강남역 근처에서 만나 사무실까지 따라갔는데 가입비 300만원에 결혼이 성사되면 나중에 1000만원을 내되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과 결혼하면 두세 배 더 내라더라. 맞선 상대에 따라 가격이 다른 게 기분 나빠 가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10월까지 결혼중개업 관련 피해구제가 148건, 상담 건수는 2217건에 이른다. 배우자 조건과 다른 상대를 주선하고 업체가 고용한 사람으로 맞선 횟수를 채우거나 허위 프로필을 제공해 피해를 주는 사례가 많았다. 경기 부천시에 사는 30대 남성 박모씨는 지난해 만남 서비스 4회를 제공받기로 하고 업체에 가입비 99만원을 냈지만 첫 번째 만난 여성은 매칭매니저의 조카였고 두 번째 여성은 나이, 학력, 직업이 모두 가짜였다. 또 계약 해지 후 가입비 환급 거부부터 맞선 상대방의 성희롱까지 피해 유형도 다양했다.
결혼업체 난립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정부의 규제가 시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변신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남녀가 자연스레 만날 수 있는 공간도, 문화적 토대도 부족하다”며 “한국 사회가 노동시간이 긴 ‘과로 사회’가 된 것이 한 이유”라고 말했다.
결혼문화에 대한 여성들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혼은 가족 간 결합이자 계급 재생산의 도구다. ‘중매쟁이’의 현대판인 결혼정보회사에서 여성이 등급화되는 현실을 재확인하게 된다”며 “결혼업체의 난립은 결혼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파트너와의 잠정적인 거래임을 드러낸다. 100세 시대를 맞아 동등한 파트너십이 결혼정보 서비스를 통해 가능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