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여성 통해 민족 슬픔의 근원 찾겠다”

 

▲1948년 강원도 양양 출생 ▲197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확인’으로 등단 ▲1991년 한무숙문학상, 2011년 제6회 고정희상 수상 ▲대표작으로는 장편소설 ‘배반의 성’ ‘사랑과 상처’ ‘황홀한 반란’과 소설집 ‘절반의 실패’ ‘꼽추네 사랑’, 에세이집 ‘이경자, 모계사회를 찾다’ ‘딸아, 너는 절반의 실패도 하지 마라’ 등이 있다.   cialis coupon cialis coupon cialis couponwhat is the generic for bystolic   bystolic coupon 2013
▲1948년 강원도 양양 출생 ▲197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확인’으로 등단 ▲1991년 한무숙문학상, 2011년 제6회 고정희상 수상 ▲대표작으로는 장편소설 ‘배반의 성’ ‘사랑과 상처’ ‘황홀한 반란’과 소설집 ‘절반의 실패’ ‘꼽추네 사랑’, 에세이집 ‘이경자, 모계사회를 찾다’ ‘딸아, 너는 절반의 실패도 하지 마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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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기자
“지금 10대, 20대 친구들이 관심이 없다고 해서 전쟁과 분단의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탈북 여성을 통해 우리 근현대사 슬픔의 근원이자 씨앗을 짚는 일, 전쟁을 겪은 세대의 작가인 제가 지금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 느꼈습니다.”

1980~90년대 한국 여성주의를 이끌어낸 작가로 평가받는 중견작가 이경자(64·사진)씨가 신작 소설 ‘성옥이네 집은 어디인가’를 여성신문에 연재한다. 이 작가는 이 땅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천착한 소설인 ‘절반의 실패’로 세상에 알려진 이래, 80만 부가 팔린 신문 연재소설 ‘혼자 눈뜨는 아침’(광주매일)과 ‘황홀한 반란’(세계일보) 등을 발표하며 인기 작가 반열에 올랐다.

64세, 황혼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이 소설(성옥이네~)에 미쳐 있다”고 말할 정도로 작품에 대한 열정을 숨기지 못하는 작가를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연필로 빼곡 메모한 글씨가 가득한 취재노트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수개월 전부터 작가가 하루도 빠짐없이 들고 다녔다는 이 노트에는 소설을 위한 밑작업인 사전 조사와 인터뷰 내용 등이 촘촘히 기록돼 있다. 

작가는 “이런 노트가 벌써 네 권째”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배고픈 환란의 시기에 ‘한국에 가면 잘살 수 있다’는 이야기만 듣고 탈북을 감행한 여성 ‘성옥’이 주인공이에요. 자본주의가 뭔지, 자유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한국에 온 성옥은 새로운 조국에 정을 붙이고 열심히 살아보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녀에게 ‘탈북자’라는 틀을 지우지요.”

작가가 찬찬히 작품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성옥의 할아버지는 1940년대 초 경상도에서 강제징용으로 후쿠오카 탄광에 끌려가 광복 이후에도 귀국하지 못하고 일본에 남았고, 아버지는 1960년대에 북송선을 타고 함경도로 가게 된다.

“탈북 여성을 통해 일제 강제징용부터 북송, 탈북까지 이르게 되는 근현대사의 슬픔을 말하고 싶다”는 작가의 말처럼 성옥은 물론이고 북송을 한 그녀의 아버지와 강제징용으로 재일동포가 된 할아버지까지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시대적 의미를 갖고 있다.

일본에서는 조센징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에서는 귀국자라는 이름으로 이방인 취급 받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느꼈을 소외감을 탈북자의 신분이 돼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된 성옥이 할아버지의 숨결을 찾아 후쿠오카의 탄광으로 떠나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될 예정이다.

작가는 “이 장면에 사실성을 더하기 위해 실제로 수일 내 후쿠오카를 향하는 비행기를 탈 예정”이라며 “후쿠오카 현지에서 쓰게 될 첫회는 나 자신이 성옥이 된 심정으로 쓸 생각”이라는 기대감을 비쳤다.

전쟁과 분단은 이 작가의 오랜 화두였다. 그는 강원도 양양에서 1948년 태어나 열여덟 살 때까지 살았다. 양양은 분단 직후 북한 지역이었다가 전쟁을 겪고 다시 남한으로 편입된 수복지구다. 

그는 “나는 해방과 전쟁 사이에서 태어났다. 서너 살 나이에 전쟁을 겪었는데 유전자와 무의식 속에 그 고통이 스며있지 않나 싶다”며 “그래서 더욱더 평화, 자유, 차별 없는 세상에 대한 깊은 애정과 근원적인 그리움을 가지게 된 듯하다”고 전했다.

‘페미니즘 작가’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남성 위주의 사회에 날선 비판을 해왔던 작가의 글은 최근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이번 작품에서도 전쟁과 분단의 모순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탈북 여성의 삶과 생각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데에 초점을 뒀다.

작가는 “나는 내가 늙어가는 것이 참 좋다”며 “젊을 때와는 다르게 분노도 따뜻하게 쓰는 법을 알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이가 들수록 부드러운 것이 더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는 것.   

그러나 이 말이 불의나 모순과 타협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고, 항상 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을 아끼지 않는 이 작가의 글은 독자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작가는 “남한을 편들지 않으면서도 북한을 비방하지 않는, 무엇보다 탈북 여성들의 자존심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는 글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라며 “탈북 여성과의 정서적 일체감을 표현해 그들을 우리와 하나로 받아들이고 남북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게 하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탄탄한 취재 과정은 이 작가의 가장 큰 무기다. 이경자씨는 실제로 ‘여성인권을 지원하는 사람들’(여인지사)에서 주선하는 남북여성 합창단 활동을 하고 있다. 평양과 금강산을 수차례 다녀오고 남북 작가회담에도 참여했던 이력에도 불구하고, 중앙도서관의 북한자료관을 드나들며 북한의 책과 논문, 교과서까지 탐독할 정도로 공부에도 열심이다.

30대의 이경자는 이 땅에서 여성이 겪는 고부간의 갈등, 가정폭력, 외도와 매춘, 빈곤 등의 여러 고통을 드러내 보이며 여자·아내·엄마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깊이 들여다보는 투사로서 글을 썼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무공해 음식 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 읽어도 자신의 위치와 연령에서 자기 식으로 소화할 수 있는” 작품을 남기고 싶다는 것.

그러나 이는 표현 방법상의 차이일 뿐, 그는 분명 지금도 여성의 시각에서 여성의 문제를 다루는 여성주의자다. 이 작가는 “나는 학문이나 이론으로 여성주의를 공부한 사람은 아니지만, 운명적으로 여성·딸·아내와 같은 말의 의미와 슬픔을 터득한 사람”이라며 삶의 내력을 설명했다.

그는 “어머니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황제 같던 폭력 남편으로부터 받았던 부당한 대우에 대한 상처를 자신의 맏딸로 태어난 나를 또다시 차별함으로써 치유하려 하셨고, 나는 제도화된 사회에서 결혼생활로 인한 부자유와 불평들에 시달려 왔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그로 인해 “여자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제2의 성이어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됐다”는 것.

2003년 이혼 후 생활에 대한 질문에는  “분명 처음에는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남편이나 시집 등에 쏟을 에너지를 오롯이 글쓰는 데 투자하니 작가로서는 참 좋다”고 말했다.

“소설로 당대의 가장 본질적인 갈등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하는 소설가 이경자씨가 들려줄 탈북 여성 성옥씨의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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