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상황에서 ‘표출’과 ‘조절’이 중요, 분노의 고리를 잘 풀어 나가면 자기 성찰과 자기 성장이란 선물을 받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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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자아의 성장과 변화를 위해 여성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오랜 세월 인내와 순종을 강요 당해온 여성에게 ‘분노’는 금기시된 사항이다. 그러나 분노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딛고 분노에 매몰되기보다 분노하는 자신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성찰함으로써 도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 정말 매력적인 역설 아닌가.

최근 새롭게 개정돼 나온 ‘무엇이 여성을 분노하게 하는가’(이화여대 출판부)엔 이런 맥락에서 ‘여성을 바꾸는 분노의 심리학’이란 부제가 붙어 있지만, 공감할 만한 사례와 해석을 곁들여 에세이를 읽어 내려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심리치료사 출신인 저자 해리엇 러너는 미국에서 특히 여성심리학과 가족관계 분야에서 저명한 학자다. ‘여성의 분노’라는 별로 매력적이지 못한 주제 때문에 어머니와 친한 친구 다섯 명 정도만 독자가 되어줄 것이라고 저자 스스로도 의기소침해했던 책은 출간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어판만 200만 부 이상 팔려나가고, 전 세계 25개국 언어로 출간되는 홈런을 쳤다.

저자가 책을 쓰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분노의 원인뿐 아니라 “분노를 만들어낸 대인 관계를 변화시켜 나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우선적으로 부모와 자식, 아내와 남편 등 가족관계 속에서 파생되는 분노에 집중, 다양한 방식을 통해 독자가 분노의 악순환 고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끈다. 가령, 늘 남편의 고집에 굴복하고 마는 아내의 “일시적이고 조용한” 분노에 대해 “원만한 결혼 생활을 위해 자신이 절대적인 약자의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잘못된 고정관념”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자녀에 대한 분노는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지나친 역할을 하면서 자녀들 스스로 생각하고 느껴야 할 문제마저 나서서 관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특히 우리가 알게 모르게 만들어내는 분노의 ‘은폐’ 수단인 ‘삼각관계’에 주목한다. 즉, 우리는 어떤 사람(일)에 대한 분노가 다른 사람(일)에게 우회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데, 어떤 상황에서 생긴 불안이 다른 장소에서 알 수 없는 분노로 탈바꿈한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어떤 사람에게 받은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이시키는 것을 넘어 제3자에게 화풀이하는 것으로 불안을 줄이기도 하고, 원래 문제에서 생긴 감정적 긴장감을 무의식적으로 덜어내기도 한다. 때문에 분노를 야기한 근본 문제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고 생각조차 하지 않을 수 있다. 관계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어느 한 쪽에 문제가 있다고 쉽사리 치부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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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갈등 상황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더 취약하다. 문화적으로 자기비하와 억압 속에 살아왔기에 마음 깊숙이 분노가 자리하고 있는 데다가 한편으론 ‘관계’를 망칠까봐 늘 두려워하고 막연한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

이 해결되지 않는 분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저자는 ‘용기’ ‘저항’ ‘자기 규명’ ‘자립’ ‘가족 알기’ 등 몇 개의 키워드를 통해 이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역자 중 한 사람인 원로 심리학자 김태련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책의 원제 ‘The Dance of Anger’의 의미심장한 뜻에 주목한다. 그는 마치 강강술래처럼 여럿이 함께 추는 춤의 비유를 들어 “나의 행동이 상대방의 행동을 유도하고 상대방의 행동은 다시 나를 변화시킨다”며 “분노 상황에서 ‘표출’과 ‘조절’은 둘 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합리적인 방법과 적절한 자기방어가 안 된다면 문제는 여전한 채 분노의 악순환 고리에 빠져들게 되지만, 이 분노의 고리를 잘 풀어나가면 자기성찰과 자기성장이란 선물을 받게 된다”고 강조한다.

‘히스테리컬한 여자’라는 비난이 두려워 애써 외면하기에 급급하다면 분노는 어느 순간 스스로의 통제를 벗어나 폭발,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재앙이 된다. 이를 막을 수 있는 길은 사태를 직시할 수 있는 용기와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강력한 의지임을 책은 시사한다. 

분노를 느낄 때 명심할 몇 가지

1.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꼭 얘기하자.

2. 화난 상태에선 논쟁을 벌이지 말자.

3. 화내기 전에 ‘지금 직면한 진정한 문제는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등을 자문해보는 여유를 갖자.

4. 비난·분석·평가·훈계·지시·경고 등 상대방에 대한 경멸과 멸시를 삼가자.

5.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스스로의 입장을 분명히 얘기할 수 있도록 ‘나’라는 용어에 익숙해지자.

6. 애매한 요구보다는 상대방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게 하자.

7. 사람들은 서로 다르기에 시시비비를 언제나 따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자.

8. “당신에겐 미친 소리 같겠지만 그게 내 생각입니다” 등 단호한 태도로 끝없는 지적 논쟁을 피하자.

9. 누구든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자.

10. 상대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해야 하는지를 강요하지 말자.

11. 제3자를 거쳐서 말하지 말고 직설적으로 솔직해지자.

12. 당장에 변화가 올 것이란 기대를 버리고 참을성을 갖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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