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600만 관중 시대의 힘, 여성 팬을 해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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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출범 30년째를 맞이한 프로야구가 첫 600만 관중의 위업을 달성하며 명실상부 한국 프로스포츠 최고의 자리를 공고히 했다. 전문가들은 “소비의 주체인 여성을 야구장으로 끌어들인 것이 야구에 제2의 중흥기를 가져왔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각 구단은 현재 여성 팬이 40%가 넘는다는 조사 결과도 속속 내놓고 있다. 무엇이 여성 팬들의 발걸음을 야구장으로 향하게 한 것일까. 궁금한 마음에 18일 넥센-삼성전이 열린 서울 목동야구장을 찾았다.

경기장을 찾기 전 간단히 끼니를 때우려 찾아간 패스트푸드점에서 색색깔의 종이를 오리고 붙여 작은 현수막을 만들고 있는 여고생 무리를 발견했다. 문구는 ‘이숭용 선수, 우리는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넥센 히어로즈의 열혈팬을 자처한 김수빈(17)양은 “오늘이 이숭용 선수가 고별전을 갖는 날”이라고 설명하며 “승패는 중요치 않다. 그간 열심히 뛰어줘서 고맙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왔다”며 응원의 말을 전했다.

야구장에 부는 여풍(女風)은 경기장 곳곳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여성 팬끼리 관전하는 모습도 눈에 많이 띄었고, 유니폼이나 각종 응원도구를 준비한 여성 팬도 많았다. 여성 팬이 늘어나며 야구장이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자신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대학 동기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았다는 박희진(23·서울시 용산구)씨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대표팀이 전승으로 금메달 따는 장면을 지켜보다 야구에 푹 빠졌다”고 회상했다. 그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국가대표를 한마음으로 응원하니까, 처음에는 그런 마음이었지만 점점 관심이 커져서 지금은 틈만 나면 야구장을 찾는다”고 전했다.

처음에는 “입만 열면 야구 타령”이라고 박씨를 타박했던 친구들도 이제는 모두 야구장 나들이를 즐기게 됐다. 친구 황혜미(23·서울시 성동구)씨는 “처음 친구 손에 이끌려 야구장을 찾을 때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싫다고 떼를 썼다”며 “그러나 응원 함성, 배트에 공이 맞는 소리, 응원가 등 야구장의 신명나는 ‘소리’들에 매혹돼서 지금은 내가 먼저 친구의 손을 잡아끄는 경우도 많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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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 야구 팬인 여대생이 시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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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히어로즈 제공
실제로 전력 불균형과 인기 구단의 부진에 2002년 한·일 월드컵이라는 ‘악재’가 겹치며 2000년대 초반 최악의 침체기를 맞았던 프로야구는 여성 팬들로 인해 일약 반전에 성공했다. 가족 단위 팬들도 야구장을 나들이 장소의 하나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각 구단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여성 팬을 위한 날을 선정하고 여성용 야구용품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벌이고 있다

넥센 히어로즈의 관계자는 “여성 관객은 홀로 경기장을 찾지 않는다. 가족과 연인과 친구와 함께 오기 때문에 관객 증가의 기폭제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밝혔다.

야구는 특유의 복잡한 경기규칙 때문에 여타 스포츠에 비해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다. 여성 팬들이 순식간에 야구 박사가 됐다고 보긴 어렵다.

주부 김화선(42·서울시 광진구)씨는 “남편과 아들이 매일같이 야구 이야기만 하는데 대화에 낄 수가 없어서 야구를 글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책을 보고 인터넷을 뒤져도 이해가 되지 않더라”며 “그래서 야구장을 함께 찾기 시작했는데 경기를 꾸준히 보다보니 볼과 스트라이크, 직구와 변화구가 구별된다.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은 많지만, 알면 알수록 새로운 것이 야구의 진정한 매력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야구 여성 팬들은 생활리듬도 야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직장인 황선화(33·서울시 금천구)씨는 “친구들과의 약속은 주로 야구경기가 열리지 않는 월요일이나 비오는 날로 잡는다. 매일 3~4시간씩을 휴대전화 DMB로 중계방송을 보니까 여분의 배터리와 충전기를 가지고 다니는 것도 버릇이 됐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DMB 중계가 끊어져 도중에 내린 적도 있다”며 웃었다.

승패를 떠나 야구를 즐길 줄 알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여성 팬. 700만을 넘어 1000만 시대에 대한 예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여성 팬들의 힘 덕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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