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아이낳기 좋은세상 경진대회’ 경기도 ‘출산부국’
‘출산=애국’ 가치관 주입…생명과 여성에 대한 존중 없어

중앙부처와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출산 장려 캠페인이 출산을 생산력과 경쟁력의 대상으로 여겨 되레 거부감을 일으킨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여성의 몸을 대상화해 부정적 인식을 심어줄 뿐 아니라 출산을 이벤트화한다는 비판도 높다.

보건복지부는 8월 30일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제2회 아이낳기 좋은세상 운동 경진대회’를 열었다. 지난 5월부터 두 달간 16개 시·도의 지역 예선과 본선 심사를 거쳐 39개 기관이 수상 기관으로 선정됐다. 공동 주관사는 2009년 출범한 ‘아이낳기 좋은세상 운동본부’다. 

워킹맘 김혜연(48·경기 성남시)씨는 “일·가정 양립 환경을 만든 모범 기관 포상이라는 취지와 달리 대회 명칭이 불쾌감을 준다. 모성을 콘테스트화할 수 있느냐”며 혀를 찼다. 경진대회의 사전적 의미는 ‘평소 닦은 실력과 업적을 개인 혹은 집단 간 상호 비교해 우수자를 포상하는 모임’이다. ‘아이낳기 좋은세상’과 ‘운동’ ‘경진대회’라는 언어의 조합부터 이질적이라는 것이다. 경기도 여성주간 캐치프레이즈 ‘경기도가 선도하는 출산부국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여성주간 기념식 당시 경기도는 참석자들에게 “‘출산부국 대한민국’ 운동에 적극 동참해 아이 낳아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을 서약합니다”라는 내용의 서약서를 받기도 했다.

조옥라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한국문화인류학회장)는 “여성의 출산에 대한 존중이 개념화되지 않아 나온 용어”라며 “생명을 낳는 여성에 대한 존중감을 드러내지 않고 여성의 몸을 대상화해 되레 출산을 좋지 않게 여기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김정수 평화를만드는여성회 대표는 “여성은 출산과 육아를 일생에 걸쳐 깊은 고민 속에 결정한다. 하지만 정부나 지자체는 저출산을 이벤트나 캠페인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며 “이 같은 캠페인에 부응하지 않는 여성은 마치 국가 발전에 저해되는 비애국적 존재라는 사회 분위기를 강화시킨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저출산 정책과 관련된 용어가 국가 정체성을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출산율 저하 현상은 ‘아이 낳기 힘든 사회’에 근본 원인이 있다. 그런데 ‘모성의 파업’이 왜 일어나는지 본질은 외면한 채 ‘출산=애국’이라는 가치관만 주입한다는 것이다.

김은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출산을 생산력과 경쟁력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 같은 용어는 여성에게 부담으로 작용해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게 한다. 출산은 여성이 삶을 실현하고, 가족공동체를 만들고, 모성능력을 발휘하는 일인데 여성의 권리는 배제된 채 사회의 목적을 실현시키는 도구처럼 이야기한다”며 “저출산 정책과 관련된 언어부터 새롭게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특히 “경쟁논리가 득세하는 사회에서 여성은 경쟁력 있는 아이를 낳기 힘들어 출산을 포기한다.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 다양성의 가치를 가진 사회로 바꾸지 않고 가부장적이고 위계적인 틀 안에서 저출산을 해결하려는 것은 잘못”이라며 “OECD 국가 중 남녀평등한 나라가 출산율이 높다.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강선미 하랑성평등교육연구소장(여성학 박사)은 “저출산 속도가 우리처럼 빠른 나라가 없다보니 국가가 위기감을 느껴 출산력을 통제하고 아이 낳는 것이 애국인 양 말한다. 우리나라는 지금 여성이 출산력 회복을 위해 아이를 낳아야 하고, 노동력 부족으로 일도 해야 한다”며 “출산에 대한 결정권은 여성에게 있다. 아이를 낳으라면 낳고, 낳지 말라면 안 낳느냐. 아이를 편안하게 낳을 수 있는 환경, 아이를 낳고 길러도 돌아갈 직장이 있다는 안정감을 주는 정책에 대한 고민 없이 나온 언어”라고 비판했다. 강 소장은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세계 22위지만 성별격차지수는 세계 104위다. 경쟁력과 성평등 지수 사이에 엄청난 갭이 있는 나라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