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학벌’ 차별이 가장 심각한 차별로 꼽혀
인권위에 접수된 차별 사건 중 90%가 ‘기각’

한국 성인들이 가장 심각하다고 여기는 차별은 ‘학력 및 학벌 차별’인 것으로 조사됐다.

김태홍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일 열린 ‘국격 제고를 위한 차별 없는 사회 기반 구축’ 세미나에서 만 20세 이상 남녀 94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에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차별’을 묻는 항목에 ‘학력이나 학벌’이라고 답한 사람이 29.6%로 가장 많았다. 동성애자(16.0%), 외모(11.7%), 장애인(10.7%), 출신 국가(6.8%), 미혼모(6.2%), 인종 및 피부색(6.0%), 고령자(4.0%), 출신 지역(3.4%), 여성(2.6%)이 뒤를 이었다.

‘학력·학벌’을 꼽은 비율은 2004년(21.5%)에 비해 8.1%포인트(p) 상승한 것이다. 또 ‘동성애 차별’은 이전 조사(7.2%)보다 2배 이상 높았고 ‘인종 및 피부색’이라는 응답자도 이전 조사 때는 거의 없었으나 이번에 크게 늘었다. ‘외모 차별’과 ‘미혼모 차별’을 가장 심각하다고 답한 비율도 7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차별에 대한 인식은 남녀 간 차이가 나타났다. 여성은 학력·학벌에 이어 외모, 동성애자, 장애인 순으로 차별이 심각하다고 답한 반면, 남성은 학력·학벌 다음으로 동성애자, 장애인, 외모, 인종 및 피부색 차별 순으로 답했다. 특히 여성차별에 대한 인식의 차가 컸다. ‘여성차별이 심각하다’고 답한 여성 비율은 2004년 51.2%에서 2011년 69.6%로 늘어난 반면, 남성은 35.3%에서 28.5%로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남성의 보수성이 차별 개선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실제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차별 진정 사건은 지난해(1685건)에 비해 1.6배 늘어난 2674건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 10년간 접수된 진정 건수 중 성별, 성희롱, 임신·출산 등 여성과 관련된 차별(1457건)이 장애 차별(3591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그러나 2002년부터 9년간 접수된 9739건의 차별사건 중 실제 차별이라고 인정된 사건은 고작 10.6%, 반면 기각된 사건은 89.4%다. 형사고발한 사건도 단 3건에 불과하다.

토론자로 참석한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노동분야 등에서 제3자 개입 금지조항으로 구제하는 데 제약이 있다. 제3자 개입이나 제3자 진정을 낼 수 있는 제도가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봉정숙 한국민우회 대표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차별금지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향상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 교수도 “골방에 틀어박혀 법조문을 외워 고시를 보는 사람들이 법원에서 판결을 내리는 현 사회에서는 차별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판결을 내리기 어렵다”며 “차별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교육이 유치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발제를 맡은 김태홍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학력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은 고용 분야의 학력차별에 치우쳐 있고, 외모차별, 미혼모차별 문제를 전담하는 행정부처가 없어 정책적으로 예방하고 해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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