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9일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한국 정부에 다음과 같은 권고를 했다. “14조. 한국 정부가 2008년 5월 이후 차별금지법의 채택에 관해 거의 진전이 없으며, 이의 내용에 관한 정보가 부족한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15조. 한국 정부는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하는 여성차별철폐협약 1·2조와 2010년의 일반권고 28조, 직접차별과 간접차별을 포함, 그리고 성적지향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4항을 따르는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의 채택을 위한 조치를 시급히 취할 것을 요청한다.”

요지는 “한국 정부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것이다. 유엔의 이러한 권고는 CEDAW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2009년 12월에도 한국 정부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 바 있다. 그리고 법무부는 사회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2010년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특별분과위원회를 설치했고 근 10여개월간 이를 운영해왔다.

그러나 2011년 법무부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추진을 삭제했으며, 결과적으로 지난 수개월 동안의 작업은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권고에 대한 알리바이성 제스처라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한 일이 돼버렸다. 한마디로 현 정부의 차별금지법 입법 의지는 올 초에 이미 판정 났다고 볼 수 있다. CEDAW의 권고 이행을 현 정부에서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여성계의 의견을 모아 향후 이 법의 제정을 위한 담론을 형성하는 작업을 지속해야만 한다. 그것은 이 법의 제정을 반대하는 세력이 정치권뿐만 아니라 보수 기독교계, 경제계 등 매우 거대하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이 왜 필요할까. 우리는 이미 특정한 차별 사유에 근거한 피해를 진정할 수 있는 근거법인 국가인권위원회법(인권위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권위법은 ‘인권’을 정의한 법이 아니라 ‘국가인권위원회’라는 조직의 역할과 기능을 정의한 법이다. 그래서 인권법이 아니라 ‘국가인권위원회법’이지 않은가.

특히 차별 금지에 관해서는 겨우 1개 조항에서 규정(제2조)하고 있을 뿐이다. 차별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피해 구제를 놓고 다툼이 벌어졌을 때 궁극적으로 사법적 판단이 필요할 것은 분명하다. 무슨 법을 위반한 것인지를 판단해야 하는 판사가 인권위 조직법인 인권위법을 위반한 것으로 차별 판단을 할 수 있겠는가. 차별금지법은 이미 영국, 독일, 스웨덴 등지에서 제정됐으며 이들 나라의 차별 금지 사유에는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 성별 전환(gender reassignment)이 포함돼 있다. 물론 금지하는 차별 유형에는 직접차별과 간접차별을 모두 명시하고 있다.

이번 CEDAW의 권고는 차별 금지의 제도화에 점차 둔감해지는 한국 정부에 다시 한 번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다. 여성계를 포함한 시민사회계 역시 여성에 대한 차별 철폐가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와 함께 가는 것임을 직시하고 ‘차별금지법의 제정’ 담론을 확대해야 할 것이며, 여성가족부는 법무부로 하여금 차별금지법 제정의 추진을 요구하는 입장을 전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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