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열린 한국판 슬럿워크 ‘잡년행진’
16일 진행된 한국판 ‘슬럿워크’(SlutWalk 야한 옷차림을 하고 거리에 나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시위) ‘잡년행진’. 참가 여성들은 성폭력 두려움 없이 자유롭고 당당하게 옷 입을 권리를 소리 높여 외쳤다.
‘야한’ 옷을 입은 10여 명의 참가자들은 오후 2시 서울 안암동 고려대에서 의대생 성폭행 사건에 항의한 뒤 오후 4시경부터는 1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광화문 원표공원에서 ‘막춤’을 추며 새로운 형태의 항의를 시작했다. 이들은 망사스타킹을 신고, 가슴이 파인 옷, 짧은 치마 등 남성의 눈길을 끄는 옷들을 주로 골랐다. 상의를 벗고 브래지어만 입은 여성도 있었고 짧은 치마를 입고 여장을 한 남성 참가자도 있었다. ‘옷은 양념이 아니다. 그녀는 먹을 것이 아니다’ 등의 현수막을 들고 행진했다.
이번 시위는 트위터상에 ‘슬럿워크’에 대한 글을 올린 여성이 광화문 원표공원에 집회신고를 하고 트위터상에서 함께 논의하던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여들어 시작됐다. 이날 시위를 본 대학생 안서영(21)씨는 “기존의 시위보다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어 효과적이었다”며 “젊은 세대들이 소통할 수 있는 SNS가 이슈를 공론화하는 데 한몫을 한 것 같다”고 평했다.
‘잡년행진’은 행사로 끝나지 않고 이후에도 많은 관심과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또 하나의 이슈를 만들고 있다. 트위터상에서는 “잡년행진은 야한 옷을 입자고 주장하는 행사가 아니라 이런 옷을 입는다고 쉬워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는 걸 깨우쳐 주려는 행사(@7F7F_bot)”라고 알렸다. “슬럿워크의 취지에는 여성의 몸가짐에 대한 전통적인 사회통념에 대한 비판도 있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orxp)”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옷차림을 가지고 뭐라고 하는 것도 잘못이고, 그렇다고 성폭력 당했을 때 책임이 있다는 말도 가당치 않은 소리지만 일이 벌어지면 결국 여성들이 희생자가 되는 것은 피할 수 없어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Mad_AboutEng)”고 지적하기도 했다.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몰아 기분 나쁘다는 반응도 있었다.
유성희 YWCA 사무총장은 “성폭력 피해를 의상과 연결 짓는 것에 동의하지 않아 젊은 여성들의 반대 행사를 지지한다”며 “젊은 여성들이 이슈를 보여주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시위를 하는 한 축이 있다면 또 다른 축에서는 이러한 이슈들을 대중화하려고 노력해야 장기적으로 문제의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슬럿워크’는 지난 1월 요크대의 안전교육 강연에서 캐나다의 한 경찰관이 “성폭행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매춘부처럼 옷을 입지 말아야 한다”고 발언하고 1월 24일에는 캐나다 토론토 경찰이 학생들에게 나눠준 안전수칙에 ‘슬럿(매춘부)’처럼 옷을 입지 말라는 조항이 삽입됐다. 여성들이 이에 반발, 어떤 옷이든 입을 권리가 있다고 외치기 위해 4월 3일 토론토에서 첫 ‘슬럿워크’를 진행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