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기지 건설 막아내는 강정마을 ‘들꽃’ 여자들
지난 14~15일 제주 서귀포시 강정에서 만난 여성들의 삶의 터전 지키기를 넘어 자연환경 보존과 평화에 대한 갈구는 폭염보다 더 뜨거웠다. 이들은 하나같이 “강정뿐 아니라 제주 그 어느 곳에도 해군기지 설치는 안 된다, 여기는 평화의 섬이니까”를 외쳤다. 1993년부터 암암리에 추진돼온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위미, 화순을 거쳐 강정으로 불똥이 튀었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정영희 여성위원장 “여자들은 정말 살 수 없는 곳이 될 것”
그는 강정 출신으로 육지에서 살다 3남1녀를 출가시키고 남편과 함께 귀향해 귤 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공사 건설 현장에서 시위를 할 때마다 앞장서서 “이게 국방부 땅이냐, 국민 땅이지, 이 도둑놈들아!”라고 외치곤 했다. 그가 가장 염려하는 부분은 강정에서 계속 삶을 이어갈 “아기들”의 미래와 교육 문제, 외지인이 들어옴에 따라 벌어질 빈부 격차 그리고 도시 환락문화의 범람이다. 그를 가장 분노하게 하는 것은 지난 4년간의 반대 투쟁 과정을 통해 가족 같았던 이웃들이 원수가 되고, 절차를 깡그리 무시하고 “개미만도 못한” 인간으로 주민들을 윽박지른 공권력.
“100명도 채 안 되는 어촌계 사람들, 몇몇 해녀를 불러놓고 정식 투표 절차 없이 자기네들끼리 박수쳐 해군기지 찬성을 이끌어낸 게 무슨 법입니까? 그후 주민들이 몸부림쳐 정식으로 투표해 90% 이상이 해군기지를 반대한 것은 불법이라고 인정 안 해주고…생각해보세요, 1900여 명 마을에 해군기지 건설로 7만여 명이 들어오면 우리들이 살 수 있겠는가, 없겠는가를. 나도 그 사람들도 이 땅에 잠깐 쉬었다 가는 거지, 무슨 권리가 있습니까? 우리 아기들한테 잘 물려줘야 할 자연재산 아닙니까?”
마을 주민들은 요즘 부쩍 압박감을 절감하고 있다고 한다. 해군 측이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해 강동균 마을회장을 비롯해 마을 주민, 활동가, 시민단체 등 76명이 ‘채무자’로 전락했고, 15일 새벽엔 강 회장 집에서 고권일 반대대책위원장, ‘개척자들’의 송강호 박사를 전격 연행, 구속했다. 공사업체들도 ‘공사 지연’을 들어 주민 14명에게 2억89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웃과 원수 된 게 제일 괴로워… 불안감’과 우울증에 시달려”
“시민단체 사람들이 4년 전 처음부터 우리와 함께 했더라면 단박에 해군기지 유치 결정이 뒤집어졌을 겁니다. 이젠 어떻게 하겠어요? 서로 의지해 힘을 합쳐야지. 막을 수 있을 때까지 막아보는 게 우리의 희망입니다.”
정부로부터는 “그냥 냅두는 것” 외엔 어떤 지원도 원치 않는다는 정 여성위원장은 “지쳐서 죽을 지경이에요. 마을 사람들 중 이 문제로 우울증 걸린 이들도 많은데, 결국 해군기지 건설이 강행되면 자살자도 속출할 거예요”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강정마을 여성들은 지난 4년간 농사일과 반대 투쟁을 병행하느라 살림살이가 만신창이가 됐다고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강동균 마을회장 집. 남의 밭을 빌려 하던 밀감 농사는 관리가 안 돼 결국 포기했고, 금귤 하우스 농사를 가까스로 해내며 아내는 노동 품앗이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긴급 상황에 비상 사이렌이 울리면 어떤 때는 저녁도 못 먹고 설거지 거리도 내버려 둔 채 달려 나가요. 우리 마을 일이니까 무조건 참석해야 한다는 정신이 박혔죠. 초등학생인 손자들도 ‘할머니 어디 가? 해군 반대하러 가?’ 한다니까요. 이번 일로 얻은 것도 있네요. 아저씨(남편) 하고 저하고 이렇게 한 마음이 돼 본 것은 처음이거든요.”
이 회장은 그래도 이번 사태가 자칫하면 4·3 제주항쟁처럼 되지 않을까, 전쟁이 나면 제주도가 가장 먼저 원자폭탄을 맞겠구나 하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고 토로했다.
트위터 활동가 김세리 “마을 사람들의 절박감에 귀 기울여야”
이들 중 가장 대표적인 이는 김세리(35)씨. 트위터를 통해 강정마을의 움직임을 전국 방방곡곡으로 타전하며 해군기지 반대 지지 여론을 이끌고 있다. 그동안 강정마을에 무심했던 언론의 여백을 충실히 메워 온 셈. 5월 1일 자칭 강정당(‘강정은 살아있당’)을 발족하고 전국으로 조직을 확대 중인 그는 기자와 인터뷰를 하다 반가운 이메일을 받았다. 지난 5월 강정마을을 방문해 깊은 인상을 받았던 세계적인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국제적으로 강정마을을 알리는 영문 홈페이지(savejejuisland.org)를 최근 개설해 첫날 방문자 수가 1000여 명이 넘었다는 소식을 전해온 것.
“집을 놔두고 왜 여기 사느냐고요? 숱한 이유가 있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어서 인간의 양심을 가지고 이대로 지나쳐 갈 수 없다는 거예요.”
춤꾼이자 조감독 출신으로 4·3 사건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레드헌터’를 감독한 조성봉씨와 부부인 그는 지난 4월 1일 남편의 ‘레드헌터’ 상영차 2박3일 일정으로 강정에 내려왔다 그대로 눌러 앉은 경우.
“내가 피상적으로 알던 강정에 대한 이미지는 영화 상영 다음날 남편과 함께 해안 끝부터 시작해 2.7㎞에 이르는 구럼비 해안을 맨발로 걸으면서 깨졌어요. 이곳이 제주에선 유일무이하게 바다에서 솟아나온 하얗고 구멍이 없는 하나의 바위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믿어지세요? 저 멀리 범섬을 바라보며 야생화 무리를 지나가며 너무나 아름다워 남편과 둘이서 엉엉 울며 걸었어요.”
체류 기간 석 달을 넘기며 현재 미디어 대책팀의 핵심으로 맹활약 중인 그는 돌고래가 해안가에서 춤추는 풍경 등 강정의 아름다운 풍광을 트위터에 열심히 올린다. 사람들이 “도대체 여기가 어디예요?”라고 물어오면 “여기는 강정마을인데, 해군기지가 건설될 예정이어서 곧 이런 풍경을 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라고 답함으로써 사람들의 관심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내곤 한다.
“노무현 정부 당시 북한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긴장감이 완화되면서 동북아를 향한 대양 해군정책을 세운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때 제주에 해군기지를 설치할 것을 본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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