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천적 태도로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 다뤄
예술은 제도의 질김을 그보다 더한 질김으로 고발해야
전시를 기획한 안소현씨는 “유쾌한 예술의 힘을 모아 지금 무소불위로 진행되고 있는 4대강 사업에 대해 말하기 위해, 혹은 지분대기 위함”이라고 전시의 기획 의도를 설명하며 “이제 와서 예술이나 전시가 4대강 사업과 관련된 법과 제도를 움직일리는 없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예술이 움직일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모순과 폐단에도 불구하고 유지되는 제도의 질김을 예술은 그보다 더한 질김으로 고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전시에는 4대강 사업이라는 다소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낙천적 태도를 놓지 않는 재기발랄한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권오준, 권용주, 김상돈, 김온, 김태권, 노순택, 레나타 수어사이드, 리산, 서평수, 안드레 마에노, 오뉴월, 오재우, 이수성, 최호철, 홍철기 등 15명의 회화, 미디어아트, 설치미술,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선보인다.
전시의 모든 출품작들은 기획 의도에 따라 새롭게 제작됐다. 기획자가 기존에 제작된 작품들을 선택하는 여타의 전시와는 달리 작가와 기획자가 같이 고민하고 함께 새로운 형태의 작업을 구상하면서 만든 전시인 것이다.
전시의 공동 기획자인 서준호씨는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많은 사람이 말하고 한편으로 믿고 싶지만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며 “사람들이 보지 못하던 것을 끄집어내 제시하고 그 사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계몽과는 다른 예술의 효과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서울 견지동의 SPACE99와 신문로의 EMU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다소 복잡한 구조의 화이트 큐브인 SPACE99에서는 주로 공간을 활용해 의미를 생산하는 작업이 펼쳐진다. 움직이고 소리를 내는 복합 매체의 설치와 평면으로 추상화된 공간 등의 설치미술, 분할된 영상 등의 미디어아트 등이 그것이다.
권용주 작가의 설치작품 ‘폭포’는 많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작품 중 하나다. 길가에 버려진 혹은 누군가 주워가도 상관없는 물건들이 아슬아슬하게 쌓여 엉성한 구조물을 이루고, 그 위로 가끔씩 힘찬 물줄기가 굉음을 내며 쏟아져 내린다.
미디어아트 작품인 ‘자아분열적 인터뷰’는 한 인물이 전혀 다른 정치적 성향을 가진 두 인물 역을 맡아, 서로를 가상으로 4대강 문제에 대해 인터뷰하는 형식의 2채널 영상이다. 마치 TV 토론 프로그램의 찬반 토론자 같기도 한 이들은 그러나 사실 서로 대립되거나 역설적인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분열’적인 논거를 펼친다. 작품을 기획한 오재우 작가는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 안에는 분열적인 두 가지 성향이 모두 존재하며, 그것을 해결하지 않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며 “작업을 통해 두 개의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아니라 그 분열이 만들어내는 이데올로기 자체를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공연장을 겸한 어두운 지하 공간인 갤러리 EMU에서는 주로 사건을 다루는 미디어와 연관된 작업들이 전시됐다. 4대강 사업과 관련된 사진이나 만평, 풍자만화 등이 특정한 미디어의 관점이나 지면의 제약 없이 자유로운 형태로 관객을 만난다.
또 레나타 수어사이드와 김온, 홍철기 작가가 협업으로 음악과 사운드 퍼포먼스인 ‘강 같잖은 평화: 목소리, 음악, 소음이 있는 삼면화’도 선보여 관심을 모았다. 이들은 찬송가 ‘내게 강 같은 평화’를 리메이크해 더 이상 강 같은 평화를 원할 수 없는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김온은 말을 더듬듯 단어를 반복하고 단어와 단어 사이에 간격을 두면서 ‘강’ ‘같은’ ‘평화’를 불어로 말하는 등 독특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전시는 24일까지 종로구 견지동 space99와 신문로 EMU에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