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의 접경지대를 연구하는 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를 따라 접경지대를 돌아보게 되었다. 단둥에서 출발하여 압록강을 따라 백두산까지, 두만강을 따라 투먼까지 이르는 강행군이었다. 결과적으로 북·중 국경선을 따라 기행하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하늘 아래 첫 동네로 일컬어지는 백두산의 내두산 마을을 찾게 되었다. 내두산 마을은 순전히 조선족으로만 이뤄진 촌락이다. 역사적으로 따진다면 항일·항미(6·25전쟁 시)에서 민족적인 자부심을 찾는 연변 조선족 후예들이 모여 살고 있는 마을이다.

백두산 관광특구인 얼다오바이허(二道白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마을인 내두산촌은 얼핏 보면 연변지역의 어느 산촌 마을보다도 풍요롭고 평화로워 보인다. 마을 한가운데 태양열 공동 목욕탕이 있을 정도로 촌락 전체가 자율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가구가 넘었던 내두산 마을의 가구 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어 지금은 50가구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젊은 여성들이 일자리를 찾아서 한국으로 떠나게 되면서부터다. 그곳 초등학교는 폐교된 지 이미 오래고 어린아이라고는 유치원생인 촌장의 늦둥이 아들이 고작이었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한국으로 돈벌이를 떠난 여성들은  그 심심산골 마을로 되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 되돌아 왔다가도 또다시 한국으로 나가거나 아예 한국 남성과 결혼하여 한국에 정착한다. 금강산에서 관광 안내를 하다가 남북관계가 경직되면서 일자리를 잃게 된 촌장의 ‘아름다운’ 딸은 한국 남성과 결혼해 그곳을 떠났다. 딸을 한국 남성과 절대로 결혼시키지 않겠다고 했던 촌장이지만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 

남편이나 조부모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떠났다가 되돌아온 여성들마저 가정불화 끝에 절반가량이 이혼을 경험한다. 가족을 유지하려다 가족이 붕괴되는 아이러니한 상태가 초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구 감소로 인해 촌락 자체가 붕괴되고 있었다.   

한국 여성들이 사회진출을 하게 되면서 조선족 여성들은 한국 여성들이 비운 일들을 도맡아 하는 값싼 대체노동력이 되고 있다. 그 결과 연변 조선족 마을 자체의 공동화(空洞化)가 진행되고 있다. 고향과 민족공동체가 무너진다고 하여 애향심을 강조하면서 여자들로 하여금 그곳을 떠나지 못하도록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이 선망의 대상이 되어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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