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여성 ‘코리안 드림’은 꿈인가-마닐린 몬타노의 고백

 

마닐린 몬타노의 결혼식 - 마닐린 몬타노씨가 2007년 11월 15일 필리핀 파시그시티 비낭오난 리잘 지역의 한 교회에서 13살 연상의 한국인 재혼남과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cialis coupon free prescriptions coupons cialis trial coupon
마닐린 몬타노의 결혼식 - 마닐린 몬타노씨가 2007년 11월 15일 필리핀 파시그시티 비낭오난 리잘 지역의 한 교회에서 13살 연상의 한국인 재혼남과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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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린 몬타노씨 제공
“두바이로 가정부 일을 하러 떠나기 전 남편이 사준 결혼반지를 잃어버렸지만 서운하지 않았어요. 한국에는 다시 가고 싶지만 한국 남자는 싫어요.”

마닐린 몬타노(28)씨의 눈가에 살짝 이슬이 맺혔다.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8일 오전, 필리핀 안티폴로시티 앙오노 지역에 있는 물루라바 세탁소. 마닐라시티에서 지프니를 두 번 갈아타고 2시간쯤 가야 하는 동네다. 150㎝가 채 안 되는 작은 키에 아담한 체구인 마닐린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십자가가 걸려 있는 3평 남짓한 세탁소는 후덥지근했다. 그녀에게 한국은 ‘미워하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나라다. 한국 정착을 꿈꾸던 그녀는 결혼에 실패한 후 고향에 주저앉았다. 마닐린은 “한국 남자는 비호감”이라면서도 “다시 한국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여전히 ‘코리안 드림’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한국에서 만나 한 달 만에 결혼했다가 파국 맞아

마닐린은 2003년 한국에 왔다. 인천 부평구에서 큰언니 마리셀 가족과 함께 살았다. 한국인 형부는 건설회사에 다녔다고 한다. 오전 8시부터 가사도우미로 7시간 일하고 매달 60만원씩 벌었다. 2007년 주변 소개로 전남편을 소개받았다. 나이가 13살 위였고 딸 하나를 둔 재혼남이었다. 한 달간 짧은 연애를 했다. “핸섬(handsome)한 남자였어요. 결혼 전 8살 된 귀여운 딸도 만나고, 시부모님도 만났어요.” 꿈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결혼식을 하러 필리핀에 왔다. 그해 11월 15일 고향의 한 교회에서 치른 결혼식에는 친척, 친구 등 100여 명이 마닐린을 축복해주기 위해 모였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신랑은 5일 만에 필리핀을 떠났다. 주필리핀 한국 대사관에 비자 신청을 하려는 그녀를 남편이 말렸다. 전남편은 결혼 후 6개월 동안 매달 8000페소(약 21만원)씩 마닐린에게 줬다. 1년에 두 차례 필리핀에 와선 2∼3일 머물렀다. 필리핀 국가통계청(NSO) 결혼증명서를 국제우편으로 한국에 보냈다.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나, 빨리 한국 데려가줘요”라고 독촉했지만 소용없었다.

마닐린은 “하루는 남편과 통화하는데 옆에 남동생이 있었어요. 남편이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며 ‘내가 주는 돈으로 남자 사귀지?’라고 의심하더니 돈을 끊었다”고 말했다. 한국말과 영어를 반반 섞어 말하던 목소리가 순간 높아졌다. “일부러 그런 것 같아요. 멀리 떨어져 있는 동안 믿음이 없어졌어요….” 지금도 마닐린은 남편이 결혼 5일 만에 왜 자신을 떠났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

마닐린은 재작년 9월 두바이로 갔다. 가정부로 일하기 위해서다. 1년여간 머물다 직업훈련소에 들어가려고 고향에 돌아왔다. 한국 가기 전 3년여간 일한 세탁소에 재취업해 5개월 반짜리 ‘컴퓨터과학’ 훈련과정을 마쳤다. 마닐린이 ‘아떼(ate, 언니)’라고 부르는 세탁소 주인이 교육비 4700페소를 지원해줬다.

가톨릭 국가라 이혼도 못해 혼인무효소송에 600만원

마닐린은 매주 월요일부터 6일간 일한다. 오전 8시부터 11시간 일해 한 달 4000페소(약 10만원)를 벌어 부모님에게 드린다. 세탁소 주인 마리아 크리스티나 이시드로 말리한(44)씨는 “마닐린은 착하고 성실한 아이”라며 “한국 남자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왜 일찍 서둘러 결혼하느냐’고 했었는데…. 운이 나빴다”며 말끝을 흐렸다.

동생 글로리아도 한국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한국인 남성과 결혼했다. 마닐린의 결혼이 깨진 후에도 부모님은 글로리아의 한국행을 반대하진 않았다. 마닐린 가족은 한국과 인연이 깊다. 고모도, 외사촌도 한국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한국인 남성과 결혼했다.

마닐린은 5남6녀 중 셋째다. 결혼한 큰오빠 가족부터 여동생과 조카, 사촌오빠, 사촌언니네 아들까지 14명이 한 집에서 산다. 마닐린은 “필리핀은 가톨릭 국가라 낙태가 금지돼 자녀를 많이 출산해요. 우리 같은 대가족(Big family)도 흔하죠”라며 모처럼 웃음을 지었다.

파시그시티 비낭오난 리잘 지역에 있는 마닐린의 집은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50∼60년대 농촌 가옥이었다. 회칠이 벗겨져 시멘트가 드러난 허름한 거실에 앉아 있으려니 한국 노래가 들려왔다. 타갈로그어로 번안한 드라마 ‘아이리스’ 주제곡 ‘잊지 말아요’였다. 버스 운전기사인 아버지 로만(58)씨는 건강이 나빠져 수술을 받은 후 ‘개인택시’ 같은 트라이시클을 몰고 있다. 한 달 내내 일하지만 300페소(약 8000원)밖에 벌지 못한다.

마닐린이 결혼 앨범과 결혼증명서, 편지 한 장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결혼 앨범 속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결혼반지가 담긴 바구니를 든 화동의 뒤를 따라 수줍은 신부는 부케를 떨어뜨릴세라 양손에 꼭 쥔 채 식장에 입장했다. 반지로 결혼의 서약을 할 땐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피로연장에서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해 보였다.  

전남편이 보낸 편지에는 “더 나은 선택을 위해 헤어지기로 결정했다. 나는 한국 정부에 결혼 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마닐린은 “남편은 이혼신고를 하라며 편지를 줬어요. 하지만 필리핀은 가톨릭 국가라 이혼이 안 돼요. 혼인무효소송을 하려면 한국 돈으로 500만∼600만원이 들어요”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어떤 경제적 지원도 받지 못했다.

지난해 7월 전남편과 마지막 만남이 이뤄졌다. 전남편은 23세쯤 돼 보이는 필리핀 여성, 그 여성의 삼촌과 함께 마닐린과 부모를 만나러 와선 “헤어지자”고 했다. 어머니 멜린다(53)씨는 “딸과 이혼하고 싶으면 여자를 데려오지 말아야지, 부모를 무시하고 경멸하는 행동 아니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닐린은 요즘 홍콩에서 일터를 찾고 있다. 필리핀의 젊은 여성들에게 외국행은 인생의 ‘기회’였다. 큰언니와 동생은 “한국에 다시 오라”고 재촉이 심하다. 부모님은 “딸의 행복이 유일한 소망”이라며 “마닐린이 한국에 정착해 씩씩하게 잘 살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마닐린은 기자와 헤어지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 가면 무슨 일이든 잘할 것 같아요. 하지만 한국 남자와는 절대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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