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잘 아는 분이 강의 도중 겪었던 에피소드다. 2시간 강의 중 절반을 마치고 나서 쉬는 시간, “화장실 5분 동안 다녀오세요”라고 했더니 휠체어를 타고 계시던 분이 난감해 하셨다는 거다. 곧바로 강사는 사태를 알아차리고, 얼굴이 화끈거려서 다음부터는 강의 도중 5분 안에 화장실 가기가 불편한 분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핀다고 한다.

인권감수성은 제일 가장자리부터 살피는 것에서 시작한다. 한 사회의 평균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남들도 나와 같다는 생각에 익숙해지기 쉽고, 주류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힘의 효능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굳이 가장자리를 살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인권이 일상의 문화로 뒷받침되지 않은 사회에서는 인권을 알 권리부터 보장하는 것이 품위 있는 사회로 가는 첫걸음이다. 유엔은 인권교육을 위한 10년(1995~2004)에 이어 2005년부터 세계인권교육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또 지난 3월 유엔 인권이사회는 ‘인권교육훈련에 관한 선언’을 채택했고 올해 말 유엔 총회에서 의결돼 공포될 예정이다.

일련의 조치는 국가와 정부부처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추진되는 2차 세계인권교육프로그램 행동계획은 대학 등 고등교육에서의 인권교육과 정부관료, 공무원, 판사 등 제도와 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에 대한 인권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인권교육을 제도화하기 위한 흐름이 본격화되고 있다. 그 흐름은 크게 세 갈래다.

첫째는 인권교육지원법 제정이다. 국가 차원의 인권교육기본계획 수립과 이행에 관한 내용으로 현재 한나라당 이은재 의원이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둘째는 인권조례 제정을 통해 지방자치단체의 인권교육에 대한 책무를 밝히는 것이다. 현재 경남·전북 등 광역자치단체와 부산시 해운대구, 울산시 북구 등에서 인권기본조례가 제정된 상태다. 마지막으로는 국가인권기본계획(NAP)을 통해 국가 차원의 인권교육 5개년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2007∼2011년 1차 국가인권기본계획이 끝나면 본격적인 평가와 함께 2차 국가인권기본계획에 무엇을 담을지 논의가 준비되고 있다.

이러한 제도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학생, 교사 등 상대적으로 인권교육을 받을 기회가 많았던 사람들이 다시 교육을 받는 것이라면 취지는 반감된다. 무시나 모욕을 일상적으로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권리를 일깨우고, 다수에게 영향을 미치는 제도와 정책을 설계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가장자리에까지 미치는 집행의 효과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도록 교육 대상의 우선순위를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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