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아기로 살기 너무 힘들어…”

“비-아이-엔-지-오(B-I-N-G-O)! 비-아이-엔-지-오(B-I-N-G-O)!” 부직포로 만든 숫자판이 바닥에 놓여 있는 강의실에 영어 노래 ‘빙고’가 신나게 울려 퍼졌다. 엄마 무릎에 안겨 있던 아기들이 마라카스를 흔들며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ABC 노래에 맞춰 실로폰채로 바닥을 두드렸다. 원어민 강사 윌리엄씨가 팝업북을 활용해 본격적인 수업을 진행했다. “헬로, 투(Hello, two), 뷰티풀 버즈(Beutiful birds)….” 새(birds), 의자(chair), 나비(butterfly) 등 입체 그림을 보여주며 1부터 10까지 숫자를 가르쳤다.

조기교육을 시키는 나이가 갈수록 어려지면서 생후 6개월 영아교육이 트렌드로 굳어지고 있다. 문화센터마다 ‘다중지능을 높이는 두뇌 발달 프로그램’ ‘인지, 사회성, 창의력을 발달시켜준다’ ‘6대 인지발달 단계 영역을 경험할 수 있다’며 돌이 채 안 된 영아를 대상으로 통합 놀이 프로그램을 운영해 인기를 끌고 있다. 육아 포털사이트에는 “6개월 아기 문화센터, 선배맘들 추천해주세요”라는 엄마들의 글이 적지 않게 올라와 있다. 외국 유치원 프로그램으로 강좌를 진행하는 영어교육 업체 강모 대표는 “영어, 수학은 연령대가 낮으면 낮을수록 인기다. 생후 6∼18개월 대상 놀이 프로그램이 엄마들에게 더 호응이 높다”고 전했다.

문화센터에서 만난 박지현(33·서울 강남구)씨는 “오감 발달에 좋고 친구도 사귈 수 있을 것 같아 6개월부터 아기를 데리고 다녔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 신촌점 문화센터 김혜진 실장은 “직장 맘들은 아기가 돌이 갓 지나거나 20개월쯤 되면 어린이집에 보내기 때문에 영아 프로그램도 저연령화되는 추세다. 유아·어린이보다 엄마와 함께 듣는 영아 강좌가 더 호응이 높다”며 “예전만 해도 0∼12개월 강좌는 베이비 마사지뿐이었는데 2000년대 후반 들어 학습과 신체놀이를 겸한 오감 발달 강좌가 개설돼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백화점별로 천차만별이지만 영아교육 프로그램을 30개까지 개설한 곳도 적지 않다.

반면 전문가들은 영아 조기교육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다. 집에서 엄마가 스킨십을 통해 정서를 안정시켜주고, 놀이를 하는 것이 두뇌 발달에 더 좋다는 것이다. 서유헌 전 한국뇌신경과학회 이사장(서울대의대 약리학교실 교수)은 “아이들의 뇌는 각 부위가 성숙돼 있지 않아 회로가 엉성하고 가늘게 연결돼 있다”며 “가느다란 전선에 전류를 많이 흘려보내면 과부하 때문에 불이 나게 된다. 조기교육을 지나치게 시키면 과잉학습장애증후군 같은 스트레스 증세가 나타나 뇌 발달에 큰 장애를 일으킨다. 뇌 발달 시기에 맞는 적기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돌 이전의 아기는 20시간 가까이 자야 한다. 아기의 뇌는 회로가 덜 발달돼 있어 금방 지치기 때문에 수면이 중요하다. 잠을 푹 자야 뇌 발달이 잘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이원영 환태평양유아교육연구학회 회장(중앙대 유아교육과 명예교수)은 “아기의 지각이나 인지, 정서, 감정은 콩나물처럼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라며 “엄마는 옆에서 민감하게 관찰하다 아기가 스스로 탐색해 궁금해 할 때 적절히 가르쳐주면 된다. 그것이 배움이고, 감성지수(EQ)를 높이는 길이다”고 말한다. 이 회장은 “인지 발달은 커가면서 하면 되고 정서와 애착 형성이 우선”이라며 “엄마들이 불안하고 자신감이 없어서 문화센터로 달려가는데 놀이는 집에서 해도 충분하다. 엄마가 가장 좋은 교육 전문가”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