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정책심의위원회가 열리면 민간의 여성 위원들은 화장실 문제를 언급할 때가 가끔 있었다. 백화점에 가면 여자 화장실 문 밖에까지 여성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여자 화장실에만 청소 용구 보관소를 두어 비좁게 만들고 있다, 음식점이나 노래방에 가면 적잖이 남녀 공용 화장실이라 화들짝 놀라게 된다 등. 그러니까 여성의 신체적·생리적 차이를 고려해 여성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자 화장실은 대·소변기가 따로 있지만 그렇지 않은 여자 화장실은 변기 수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가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였으니 성 인지적 의식이 없던 시절이라 그런지 그냥 무시로 하는 얘기이겠거니 하고 회의를 주재하는 국무총리나 관계 부처 장관들도 예사로 듣고 웃어넘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화장실 변기 문제가 무슨 여성문제라고 그러는지 의아해하기도 했다.

여자 화장실 문제가 심심치 않게 거론되자 정무장관(제2)실에서는 외국에서는 어떠한지 살펴보게 됐다. 자료를 찾아보니 1980년대 영국만 해도 여자 화장실 문제가 여성정책의 주요 과제로 다뤄지고 있었다. 그러나 여성문제에 대한 냉소적 시선이 강했던 당시 우리나라 상황에서 화장실 문제, 그것도 변기 문제를 여성정책 의제로 올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여자 화장실 문제가 제도적으로 해결될 기미를 보인 것은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공중화장실법안이 국회에 발의되면서부터다.

이 법안은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문화 척도가 될 수 있는 화장실 문화를 개선하고자 하는 것으로서, 제안 이유에서 특히 “우리나라 공중화장실의 여성용은 남성용에 비해 매우 부족하여 여성들이 공중화장실을 이용함에 있어 불편이 심한 형편”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이 제정된 것은 그로부터 3년 뒤인 2004년. ‘공중화장실등에관한법률’에서 공중화장실은 남녀 화장실을 구분해야 하며 여성 화장실의 대변기 수는 남성 화장실의 대·소변기 수의 합 이상이 되게 설치하도록 그 기준을 정하게 된다. 이 법이 시행되던 무렵 서울시에 근무하면서 시의회에서 시정 질문을 받고 각 구청에 공중화장실 설치관리 조례를 제정하도록 행정지도를 강화하기도 했다. 공중화장실은 ‘국가 문화의 척도이자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가장 기초적인 공간’으로서 국민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적정 수요의 설치와 효과적인 유지·관리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공연장, 관람장, 전시장이나 공원, 유원지, 관광지 등 수용 인원이 1000명 이상 되는 시설에서는 여성 화장실의 대변기 수는 남성 화장실의 대·소변기 수의 1.5배 이상이 되도록 설치하는 것으로 규정되기에 이르렀다.

최근 공항 남성 화장실에 여성들이 청소하러 드나들어 외국인 남성들이 당혹해하고 있다 한다. 이제는 화장실 청소 일도 남녀 가려서 남성들도 불편이 없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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