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장관(제2)실이 활동하면서 초반부터 갈등과 애로에 부딪친 것 중 하나는 한국여성개발원과의 관계였다.

여성개발원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규모를 가진 정부출연 여성문제 전담 기구로 1983년 출범했다. 당시 여성개발원은 여성의 사회참여 및 복지증진에 기여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여성 관련 문제에 대한 조사연구, 여성 능력 개발을 위한 교육훈련, 여성활동 지원 등 3대 주요 업무를 수행하도록 돼 있었다. 소관 부처는 보건사회부였으나 그 업무의 영역은 실제 보사부 소관(부녀복지)만이 아니라 노동부(고용), 문교부(교육) 등 범정부적으로 걸쳐 있었으며 1988년 정무장관(제2)실이 발족되기 전까지 5년 동안 사실상 정부와 민간을 오가며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무대에서도 여성문제를 전담하는 사실상의 국가기구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무장관(제2)실은 여성업무에 매진하면 할수록 그 업무 추진의 근거를 총리훈령에만 의존하고 있어 정부조직법상 부녀에 관한 권한을 가진 보사부와의 보이지 않는 갈등으로 고전하기 시작했다. 기관 명칭에 ‘여성’이라는 용어가 드러나지 않아 대국민 홍보에도 애로에 봉착했다. 여성개발원의 연구 활동이 정무장관(제2)실의 여성정책 추진에 실질적인 뒷받침이 돼야 함에도 소관 부처의 벽에 부딪쳐 제대로 원활한 업무 협조가 이뤄지지 못했다. 여성개발원은 정부보다는 민간 NGO의 활동을 더 뒷받침하고 있다는 불만도 내부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여성개발원이 정책 연구개발에 전념할 필요성이 강조됐다. 사실상 국가기구 역할을 해온 여성개발원과 마찰이 생긴 것은 당연했다.

이와 같은 갈등과 마찰을 해소하기 위해 1991년 여성개발원에 대한 업무조정 감독 권한을 보사부에서 정무장관(제2)실로 이관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정무장관(제2)실은 여성전담 국가기구로서 역할 정립에 나선다. 그간 여성개발원이 발간해 왔던 ‘여성백서’를 정무장관(제2)실에서 발간하는 것으로 변경하고 국제무대에서 유엔의 여성회의 정부 수석대표는 정무장관(제2)으로 지정하기에 이른다. 그러다가 1999년 여성개발원은 다른 정부출연 연구기관들과 함께 인문사회연구회 소관으로 개편되어 각 부처를 가로지르는 여성문제의 특성을 자연스럽게 살릴 수 있게 됐다.

순수한 조사연구 업무를 제외하고 여성능력개발을 위한 교육훈련과 여성활동 지원업무가 사실상 폐지됐다. 교육훈련 기능은 현재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여성활동 지원업무는 여성발전기금 등으로 정부에서 수행하고 있다. 여성문제 연구의 산실이었던 여성개발원은 2007년 ‘여성정책연구원’으로 명칭을 바꾸고 명실 공히 정부의 여성정책을 개발하는 연구기관으로 거듭나고 있다.

한편, 육아문제에 관해서는 2005년 여성가족부 출범을 계기로 당시 유치원과 어린이집 통합 문제가 불거지면서 유아교육과 보육 등 육아정책 연구를 종합적으로 수행할 별도 기구로 ‘육아정책개발센터’가 설치됐다. 현재는 육아정책연구소로 개명해 존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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