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는 고달프다
친정엄마는 고달프다
  • 김남희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1.05.27 13:26
  • 수정 2011-05-27 1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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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난나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육아문제 해결을 위해 생활권을 친정으로 옮겨가는  ‘신모계사회’가 형성되고 있다. 이를 보고 ‘모계사회가 왔다’고 흔히들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살림과 육아의 책임이 대폭 친정 쪽으로 넘어온 반면 가족관계의 권력구조는 여전히 남성 중심적인 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성의 육아 부담은 자식이 장성하고 결혼해도 끝나지 않고 오히려 더 커져간다. 손자뿐 아니라 사위까지 보살펴야 하는 육아 부담이 여성의 노후를 고달프게 만들고 있다.

결혼 6년차 주부인 박새롬(37·성남시 분당구)씨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재취업을 하고 남편과 아예 친정으로 들어가 살고 있다.

육아 때문에 나날이 힘들어하는 친정엄마를 보면 너무 미안하지만 명절이나 가정 대소사가 있으면 친정보다는 시댁으로 달려가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는 “자녀 양육만 엄마 위주로 한다고 해서 모계사회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장(한국사이버대 부총장)은 “최초의 ‘친정살이’ 풍속도는 육아 때문에 모여 사는 것에서 시작됐다. 이를 두고 신모계사회다, 여성상위 시대다 단정 짓는 것은 무리”라며 “보육이나 교육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지원 시스템이 크게 부족하다는 점이 오히려 돈은 함께 벌면서 육아는 여성에게 떠넘기는 등 친정 쪽에 부담이 집중되는 현상을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신모계사회의 가장 큰 특징으로 간주되는 가정 내 여성의 경제권 확보도 내용 면에선 별 실속이 없다. 결혼 4년차의 주부 이선희(32)씨는 “최근에는 맞벌이를 하니까 지출에 있어서 남편의 눈치를 덜 보긴 하지만 여전히 내가 번 돈의 대부분은 우리 가족을 위해 쓰이고, 친정보다는 시댁에 지출하는 비용이 훨씬 많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아무리 딸네와 가까이 살아도 ‘출가외인’인 딸에게는 노후를 의탁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부모도 많다. 아들 내외에게도 나이 어린 손자가 있지만 맞벌이로 힘겨운 딸을 위해 외손자를 돌봐주고 있다는 윤기숙(65)씨는 “따로 살아도 아들은 아직 내 호적에 있으니까 혹시라도 나쁜 상황이 오면 아들네로 가는 것이 마음 편할 것”이라며 “며느리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남들 보는 눈도 있는데 딸네로 들어갈 수는 없지 않으냐”라고 반문했다.

변화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딸과의 유착관계가 깊은 요즘 노인세대에서도 남아선호사상과 가부장제를 완전히 뿌리 뽑기는 힘들다”며 “딸과 사위가 장모를 모시는 경우도 자연스레 늘고는 있지만, 부모 봉양을 가부장제에서처럼 의무적인 현상으로 결합시키기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신모계사회가 여성의 스트레스 지수를 높여 여성 수명을 단축할 가능성도 있다는 흥미로운 주장도 나온다. 현재 국민 평균수명은 여자가 남자보다 7년 정도 더 길다. 정호영 경북대병원 외과 교수는 “여성 암 환자가 11년 사이 1.6배 늘었고, 이는 남성에 비하면 3~4배 높은 증가율”이라며 “이들 중 85%가 화병(火病) 증세를 보여서 여성 암 환자가 남성보다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스트레스를 여자들에게 떠넘긴 ‘팔자 좋은’ 남자들의 평균수명이 여자를 앞지를지도 모를 일”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서구식 양계제(兩系制)를 우리에 맞게 재해석해 균형적인 친족관계를 수립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부장제하에서의 과거의 규범은 작용하지 않는데, 신모계사회 나름의 새로운 규범도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라서 세대를 막론하고 모두 괴로운 것”이라고 지적하며 “친가와 외가 어느 한쪽도 소홀하지 않으면서 ‘가족은 양육을 함께하는 공동체’라는 것에 합의하고 세대가 서로 의존하는 열린 가정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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