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정규직’ 늘리는 기업은 언론 공개를
저소득 비정규직 사회보험 국가가 지원해야

 

비정규직 여성 비율이 높은 것은 단순노동이나 서비스직에서 일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여성들이 지하철 계단을 청소하고 있다.
비정규직 여성 비율이 높은 것은 단순노동이나 서비스직에서 일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여성들이 지하철 계단을 청소하고 있다.
여성 취업인구 1000만 명 시대를 맞았다. 하지만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는 남성들 몫이다.

전체 여성 임금근로자 중 정규직은 36.6%에 불과하다. 비정규직 여성이 전체의 63.4%(461만 명)로 비정규직 남성이 40.8%(399만 명)인 데 비해 훨씬 많다(한국노동사회연구소, 2010년). 비정규직 여성의 시간당 임금은 6857원으로 정규직의 65.4%에 불과하다. 정규직 남성(1만6418원)보다 3분의 1 가까이 적다(고용노동부 ‘2010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특히 여성들은 임신과 출산으로 사회에서 ‘퇴출’됐다가 다시 일터로 복귀해 비정규직이란 ‘덫’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김수현 연구원은 “25~29세 여성 임금근로자 중 56.8%가 정규직이지만 40~44세는 33.8%만이 정규직”이라며 “경력 단절 후 노동시장으로 다시 돌아온 여성에겐 좋지 않은 일자리가 주어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소장은 “남성은 저연령층(20대 초반 이하)과 고령층(60세 이상)만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많다. 하지만 여성은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을 뺀 모든 연령층에서 비정규직이 많다”며 “20대 청년층에선 고용률과 임금에서 남녀 격차가 나지 않는다. 정규직 여성은 20대 후반을 정점으로 크게 줄지만 비정규직 여성은 20대 후반과 40대를 정점으로 하고 30대 초반을 저점으로 하는 M자형을 그린다”고 설명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임윤옥 부대표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여성 일자리가 남성 일자리보다 3배 이상 줄었다”며 “특히 비정규직 여성들이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는다”고 지적했다.

한국여성민우회 고용평등상담실 이소희 활동가는 “지난 4월 접수한 상담 중에는 임신 사실을 알리자 계약 기간이 남았는데도 그만두는 게 어떻겠느냐며 노골적으로 권유하거나 관례상 고용 재계약이 유지됐으나 임신 사실을 알리자 계약서를 아예 내밀지 않아 부당 해고된 여성도 있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육아휴직은 언감생심 떠올릴 수도 없다는 것이다. 서울여성노동자회 이부민 사무국장은 “정부가 배우자 출산휴가 유급화를 추진하지만 비정규직 여성에겐 꿈 같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여성은 회사에서 성희롱이나 인권침해가 있어도 말을 할 수 없다. 계약 파기라는 불이익이 부메랑처럼 돌아와서다. 임 부대표는 “고용불안과 저임금으로 인한 인권 무권리 상태”라고 비유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박선영 다문화인권안전센터장은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제자리걸음인데 고용의 질은 악화되고 있다”며 “비정규직 여성 중 절반 이상이 1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법이 규범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고용 안정이 안 되니까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 저출산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여성 비율이 높은 것은 단순노동이나 서비스직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여성 집중 직종인 서비스·유통 업체들은 속속 아웃소싱을 늘리고 있다. 김 소장은 “기업들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을 남용하고 있다”며 “이를 막는 제도적 장치나 사회적 인식 개선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노동시장의 성별 불평등도 바뀌어야 한다. 임 부대표는 “신입사원을 뽑을 때 남성은 ‘종신형’이라며 사장이 면접을 보고, 여성은 ‘갱신형’이라며 부장급이 면접을 보는 것이 현실”이라며 “여성 정규직 비율을 늘리는 기업을 언론에 공개하고, 기업주 인식 변화를 위한 공익광고 캠페인도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가사노동이 여성에게 전가되는 사회문화적 풍토도 바뀌어야 한다. 특히 경력 단절을 예방하는 보육 인프라가 늘어나야 한다. 임 부대표는 “비정규직 여성이 기업들의 탄력 경영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정부가 일·가정 양립을 위해 유연근무제 확산에 나섰지만 실효성이 없을 뿐더러 여성 고용의 질이 더 나빠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부양자가 있는 여성들은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데 소극적이다. 이에 대해 비정규직 워킹푸어(Working Poor, 근로빈곤층)의 사회보험을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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