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밑바닥에서’
특히 연극과 무용의 만남이라는 색다른 시도를 감행했다. 반추상적인 작품으로 관객과의 소통의 끈도 놓지 않으면서 송 연출가의 예술가로서의 고집스런 작가정신도 지켜낸 것. 대사는 마치 한 편의 시와 같이 운율 있는 형태로 간소화됐다. 언어의 빈자리는 배우들의 역동적인 몸짓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리듬감 있는 소리들로 채워진다. 격정적인 사랑의 감정은 탱고를 연상케 하는 움직임으로, 서로의 갈등은 무술 동작을 떠올리게 하는 움직임으로 대체한다.
이러한 작품성은 본토인 러시아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이름 있는 두 극장인 고리키의 고향인 니주니노브고로드의 ‘고리키’ 극장과 ‘예르몰로바’ 모스크바 국립 드라마예술극장에 역수출돼 6월 중 두 차례 초청공연을 할 예정이다.
‘밑바닥에서’는 마치 출구 없는 감옥에 갇혀 일생을 살아가는 하류 인생들의 이야기다. 창녀, 범죄인, 알코올 중독자, 파산한 사업가 등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서 있는 이들의 삶이 더 나아질 가망성은 없어 보인다. 어느 날 떠돌이 순례자 루카가 찾아와 비록 거짓일지라도 순간적으로 위안이 되는 희망을 설파한다. 이것이 극이 말하고자 하는 바다. 진실이 항상 영혼을 치유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 거짓말이지만 한편으로는 희망이고 위안이라면 비난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장면마다 무대가 움직이는 회화처럼 그 자체로서 미학적 기품을 잃지 않는다는 점도 작품이 가진 매력적인 요소 중 하나다. 이는 무대를 200% 활용하는 송현옥 특유의 연출 감각 덕분에 가능했다. 무대에 상자, 기둥, 움직이는 계단, 천장에서부터 내려오는 줄 등을 설치해 배우들이 이들 도구를 오르고 내리고 매달리면서 지극히 제한적인 공간으로 여겨졌던 무대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배우들에게는 체력적인 한계가 느껴질 만큼 힘든 장면이겠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눈이 즐거운 순간들임에 분명하다.
6월 5일까지 대학로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문의 010-2654-87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