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발전기본법에 ‘성희롱’ 용어 첫 등장…남녀고용평등법에 예방 교육 규정

‘성희롱’이라는 낯선 개념은 이제 일상의 용어로 정착됐다. 성희롱 행위는 법으로 금지됐고, 성희롱 예방 교육은 법적 의무가 됐다. 직장인이라면 1년에 1회 이상은 성희롱 예방 교육을 받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성희롱은 S대 우 조교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성적 언행을 둘러싸고 개인 간에 발생하는 단순한 갈등으로 인식됐다. 그것이 성적 침해의 범죄행위라는 인식은 우리 사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1993년 8월 S대학에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대자보가 붙는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희롱 사건의 시작이다.   

신모씨는 S대 화학과 교수였고, 우모씨는 화학과에 실험기기 조작 담당 유급 조교(계약직)였다. 우씨가 기기 조작을 위한 기술 교육을 받기 위해 출근을 시작한 초기부터 신씨는 기기 작동 기술교육을 빙자해 교육과 무관한 신체적 접촉을 계속 반복했다. 산책 데이트를 하자고 요구하면서 옷을 우씨의 연구실에서 갈아입으면 된다고 말하거나, 우씨의 땋은 머리를 잡아당기며 “누가 이렇게 시골 처녀처럼 머리를 땋고 다니느냐” “단둘이서 입방식을 하자”고 말하거나, 우씨를 자신의 연구실로 불러 세워놓고 아래위를 훑어보는 등 지속적으로 이른바 ‘성희롱’에 해당하는 언동을 했다. 이런 신씨의 언동에 우씨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심리적 불쾌감과 성적 굴욕감에 시달렸다.

그러나 직장 내 불이익 때문에 즉각적인 거절은 하지 못하고 묵시적으로 거절 의사를 표현했다. 우씨로부터 성적 접근을 거절 당한 신씨는 그에 보복하기 위해 우씨의 업무를 방해했으며, 종국에 가서는 우씨를 해임했다.

1993년 우씨는 재임용에 탈락됐고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는 대자보를 교내에 붙였다가 신씨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우씨는 결국 가해자 신씨와 대리 감독자인 S대학교의 설치 운영자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다.

이 사건에 대해 서울민사지법(1994.

4.18 선고 93가합77840)은 신씨의 성적 언동은 우씨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정신적 고통 등의 손해를 발생시키고 고용상의 성차별을 한 위법한 행위라고 판시했다. 신씨에게 3000만원의 손해배상 지급을 명령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1995.7.25 선고94나15358)은 증거가 불충분하고 신씨의 행동이 경미하여 손해배상을 할 만한 ‘성적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1998.2.10 선고95다39533)은 신씨의 성적 언동은 분명한 성적 동기와 의도를 가진 것으로 그러한 성적 언동은 비록 일정 기간 동안에 한하는 것이지만 그 기간 동안 만큼은 집요하고 계속적인 까닭에 사회통념상 일상생활에서 허용되는 단순한 농담 또는 호의적이고 권유적인 언동으로 볼 수 없다. 오히려 피해자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서 피해자의 인격권을 침해한 것이며, 이러한 침해 행위는 선량한 풍속 또는 사회질서에 위반하는 위법한 행위이고, 이로써 피해자가 정신적으로 고통을 입었음은 명백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신씨의 성희롱 행위가 그의 사무 집행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은밀하고 개인적으로 이루어진 성희롱 행위에 대해 우씨가 이를 공개하지 않아 피고 대한민국으로서는 이를 알거나 알 수 없었다”며 따라서 “사용자인 피고 대한민국이 피용자인 우씨에 대하여 고용계약상의 보호 의무를 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사용자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 사건 이후 1995년 여성발전기본법에서는 ‘성희롱’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어 1999년에 남녀고용평등법과 남녀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법률에는 성희롱 금지, 성희롱 예방 교육 실시 등이 규정됐다.

성희롱 금지가 법제화된 이후 성희롱 사건은 남녀고용평등법 관련으로 노동부에 접수된 사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 국가인권위원회가 2005년 6월에 여성부로부터 성차별 구제 업무를 이관 받은 후 처리한 성차별 진정 사건 중에서 성희롱이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이러한 현상은 성희롱이 위법한 행위라는 사회적 인식을 반영하는 것임과 동시에 많은 수의 여성들이 여전히 성희롱에 노출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희롱은 성역할의 고정관념, 성에 대한 이중 기준, 사회적 관계 속에 존재하는 남녀 간의 권력 차이 등이 결합돼 발생한다. 거기에 우리의 직장 문화는 성희롱이 자라기에 좋은 토양을 제공한다. 직장에서의 상사와 부하의 관계는 업무에서의 권력 배분 관계를 넘어선 상하관계로 인간관계 그 자체를 지배하고 있다. 일하는 사람 개개인의 인격권 침해는 별다른 저항 없이 행해지고 있다. 이런 기업 문화에서 성희롱은 ‘친근감의 표현’으로 포장되기 쉽다. 따라서 성희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 모두가 개인으로서 존중되고 쾌적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기업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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