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탈리켓 마을의 한 가정을 방문하여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   cialis coupon free discount prescription coupons cialis trial couponcialis coupon free discount prescription coupons cialis trial coupon
파탈리켓 마을의 한 가정을 방문하여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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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성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서울의 낭비와 사람들의 무감각에 무척 예민해져 있었다. 마구 쓰이는 종이컵과 휴지, 비닐봉지, 영수증 종이 하나하나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내게 많은 것이 부족한 네팔은 내가 선 자리를 바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우리가 간 마을은 수도 카트만두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둘리켓 옆 파탈리켓이라는 곳이다. 정확하지는 않으나 이 마을의 고도는 대략 2000m. 홈스테이를 했던 집 마당에 앉으면 멀리 히말라야 산맥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집에서 우리는 매일 멋진 일출과 일몰, 밤이면 하늘에 빼곡한 별을 챙겨 감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주인집 청년 바트리는 두바이의 호텔에서 몇 년간 일을 하다가 결혼을 하러 얼마 전 돌아와 집에 머물고 있었다. 네팔은 아직 부모가 상대를 정해주는 중매결혼이 더 보편적이고, 그렇게 중매로 적당한 상대를 찾으면 며칠 안에 결혼이 성사된다고 한다. 아직 상대도 없는 바트리가 한두 달 안에 결혼할 예정이라는 것이 낯설지만 재밌기도 했다.  

우리의 주목적은 오가닉 농장 체험이었으나 결혼 때까지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우며 비교적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바트리 덕에 점차 네팔 농촌생활 체험의 비중이 높아졌다. 바트리는 매일 한 곳씩 우리를 마을 주변 명소로 데리고 갔다. 가깝다는 바트리의 말과는 달리 산 하나는 올라야 하는, 웬만한 하이킹 코스 정도는 될 듯한 쉽지 않은 일정의 연속이었다. 하루에 한 집씩 이웃집 가정 방문도 보너스로 주어졌고, 우리가 머무는 동안 있었던 동네 결혼식에 가서 잔치 음식도 얻어먹고 구경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네팔의 시골 마을은 우리와 비슷한 점이 참 많았다. 그들도 이웃의 어른을 삼촌, 이모라고 부르고 그들의 아이들은 조카라고 부르며 친척같이 지냈다. 바트리의 어머니 아버지도 우리를 ‘초리’(딸)라고 부르며 예뻐해 주셨고, 우리도 그 분들을 ‘아마’(엄마), ‘부바’(아빠)라고 불렀다.

 

바트리네 부엌과 어머니가 요리하는 모습.   cialis coupon cialis coupon cialis couponcialis coupon cialis coupon cialis couponsumatriptan patch http://sumatriptannow.com/patch sumatriptan p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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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성
홈스테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식사시간이다. 네팔 사람들은 우리와 달리 손님상을 따로 봐주고, 옆에서 손님이 식사하는 것을 다 지켜보고, 손님이 식사를 마치면 그제야 자신들의 식사를 시작한다. 그것이 그들의 예의다. 우리는 매끼 바트리의 가족 세 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네팔식 달밧을 가득 받아 열심히 먹었다. 식사시간은 항상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었다. 밥을 맛있게 먹고 있으면 어머니가 다가와 더 먹으라고 권하신다. 마음 약한 언니는 배부름을 무릅쓰고 조금 더 달라고 한다. 나는 미안한 표정으로 충분하다고 거절한다(시골의 밥 양은 정말 푸짐하다). 그렇게 식사를 끝내면 어머니는 “미토차?”(맛있어)라고 물으시고 우리는 배운 대로 “데레미토차!”(정말 맛있어요)라고 대답한다(우리는 맛없다는 말은 알지도 못한다. 맛이 없지도 않았지만). 항상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이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좀 더 큰 액션을 보이느라 애를 먹었다. 밥은 항상 맛있었고, 우리는 그중에서도 갓 짠 버펄로 젖을 끓인 우유를 가장 기다렸다. 따뜻한 우유에 꿀을 탄 그 맛은 정말 ‘꿀맛’이었다.

바트리의 어머니는 간소한 부엌에서 화덕 하나만으로 모든 식사 준비를 거뜬히 해내신다. 처음 우리의 식사를 준비하면서 바트리는 안 먹는 것이 있냐고 물었다. 우리는 고기는 안 먹지만, 달걀과 생선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는 채식을 한다더니 달걀도 먹고, 생선도 먹으면서 도대체 뭘 안 먹는 거냐고 의아해했다. 단순한 질문이었는데, 우리를 참 부끄럽게 만들었다. 론리플래닛에는 네팔 사람들은 자의든(종교적인 이유) 타의든(가난) 기본적으로 채식을 한다는 설명이 있다. 가난한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우리의 채식이, 절약이 새삼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전기가 자주 끊기는 네팔에서 나는 참 불편해했다. 어두워지면 자고 날이 밝으면 눈을 뜨는 것이 그렇게 힘들다는 것을 이전엔 몰랐었다. 그렇게 내게 있는 문제는 하나도 직시하지 못하면서 나는 감히 자발적 가난이, 부족함이 필요하다는 말을 얼마나 쉽게 하고 살아왔는지. 내가 선 자리, 거기서 살아가는 방법을 다시 고민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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