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맛보기"정책에 만족할 순 없다/정현백
[여성칼럼]"맛보기"정책에 만족할 순 없다/정현백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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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백/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지도 어언 1년이 흘러갔다. 군부독재로 얼

룩진 한국 현대사속에서 처음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여성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을 것이라는 기

대가 맞물리면서, 새 정부에 대한 여성계의 기대는 높았다. 그러나

지난 일년간의 여성정책은 이러한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혹자

에 따라서는 1년이라는 기간은 한 정부가 소신있는 여성정책을 밀어

부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

치일정은 그 호흡이 가파르고 그리고 내년이면 국회의원 선거로 경

황이 없을 터이니, 올해 상반기까지가 아니면 실제적인 개혁이 불

가능하리라는 것이 대다수의 일치된 의견이다. )



새 정부의 출범이 환란위기와 맞물리면서, 여성정책은 뒷걸음칠 수

밖에 없었다. 우선 정무2장관실이 폐지되고 여성특별위원회가 만

들어지면서, 원래 선거공약에서 약속한 여성부 신설안은 크게 후퇴

하였다. 최근에 여성특위가 준 사법적 기능을 갖게 되고, 99년 예산

이 2배로 늘어난 것은 다행이지만, 행정적 기능을 지니지 못하는데

서 오는 문제점은 여전히 안고 있다. 여성할당제 실시를 통해 공

직부문 참여와 정치적 대표성에 있어서 여성비율을 30%로 올리겠

다는 약속도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6.4 지방선거의 경우에 여

성의원 비율은 기초의원 1.6%, 광역의원 5.9%이었고, 이는 그 이전

선거에서보다 더 후퇴한 수치이다.



지난 1년 사이에 보다 더욱 심각해진 것은 여성 실업문제이다. 기

왕의 실업에 대한 통계방식이 사실상의 실업을 은폐하는 경우가 허

다할 뿐 아니라, 실업에서 나타나는 성별차이도 제대로 들추어내지

못하고 있다. 주로 단순보조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1순위 퇴출 대

상이고, 고용 조정과정에서 자행되는 부당해고에서도 여성의 피해가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 만약 정부가 행정력 제고를 통해, 이런 사

례들에 대한 보다 강력한 조치를 취한다면, 여성 우선해고는 훨씬

완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새 정부는 여성정책의 주류화를 내걸고, 정부기구 6개 부처

에 여성정책담당관제의 신설, 초등학교 전면급식 실시, 주로 여성들

이 고용된 5인 미만 사업장에 고용보험 확대실시, 국민연금법 개

정,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 제정을 통해 여성 지위향

상에 상당 정도 기여하였다. 또한 공기업 여성고용 인센티브제, 공공

사업에서 여성참여율 제고, 여성채용목표제 확대 실시, 실직 여성가

장 지원 그리고 여성복지 도우미사업 등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이

들이 포괄할 수 있는 여성인원은 극히 제한적이고, 이런 ‘맛보기’

행정들이 보다 많은 여성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실효성 있는 정책이

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우리 여성계는 대통령을 위시한 행정부의 보다 소신있는 과감한 여

성정책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가 지닌 심성이나 의식구조는 우리를

가두고 있는 장기지속의 감옥이다. 그래서 남성위주의 편리함에 길

들여진 대다수의 남성들이 자신들의 사고를 하루 아침에 바꾸는 일

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겉치레의 여성정책을 탈피하고 보다 신념에

찬 정치집단의 결단이 전제되지 않는 한, 한국 사회의 발전을 가로

막는 뿌리깊은 가부장적 구조는 파기되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서 김 대통령께 진심으로 바라는 바는 새로운 발상전환이다.

환란위기 이후 우리의 문제해결 방식은 과거의 틀은 그대로 두되,

어떤 특정 부분을 좀 더 쥐어짜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바로 이

‘쥐어짜기’에 끼인 집단이 여성일 것이다. 여성은 남성을 위해

일자리를 포기해야 하거나, 실업중인 남편을 대신해 돈벌이에 나

서야 한다. 삭감되는 사회복지비는 여성이 받을 수 있는 사회 서

비스를 축소시켰고, 여전히 명분없는 군사비에 엄청난 예산이 사용

되고 있다. 자본주의적 세계화가 만들어내는 가공할 만한 위기상황

은 이미 유럽 선진국에서조차도 기존의 방식으로는 사회구성원들이

더 이상 평화적으로 생존할 수 없음을 명확히 드러내주었다. 적게

벌고, 적게 소비하고, 일자리를 나누고, 그리고 사회서비스 부문(제

3섹터)에서 고용창출이 이루어지는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모색하지

않는 한, 우리 역시도 더 이상 평화를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요즈음 유럽에서 시민운동이나 사회복지분야에 일하는 간사들의 급

여를 정부가 직접 지원함으로써, 고용창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보다 발본적인 자세가 여성문제 해결과 결합되지 않는 한,

우리 정부가 시행하는 여성정책은 여전히 지엽적인 ‘맛보기 행

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취임 1주년을 맞아 여성들은 김대중대통령이 ‘대중적인 인기와

정권 재창출에 고심하는 대통령’보다는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할

지도자’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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