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지는 고려대 여성주의 교지 ‘석순’의 전 편집위원인 서지원(사진)씨의 별칭이다. 그는 회의 첫째 날 열린 비전 토크에서 ‘미친 세상에서의 생존기’라는 주제로 대한민국 20대와 여성주의자로서 살면서 충돌하는 가치관과 고민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풀어냈다.
잇지는 “여성주의를 알아갈수록 피상적인 여성 해방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내 삶의 위안이자 살아갈 수 있도록 일러주는 지혜로운 언니로 다가왔다”며 여성주의자로 살아가는 보람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나 그는 “학내에서 여성주의는 더 이상 위협적이지도 않고 ‘상식’이지만 ‘식상’한 얘기가 돼버렸다”며 “자보를 찢는 사람은 없지만 읽는 사람도 없다”고 자조 섞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특히 잇지는 “얼마 전 중앙대 여성주의 교지가 폐간될 위기에 처했을 때 시위장이 아닌 과외 학생 집으로 향했다”면서 “내 행동으로 행복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현실이 모순”이라고 고백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여성주의 매체를 만들어가는 대학생들의 의문과 고민을 직설적인 언어로 풀어낸 잇지의 발언은 참가자들의 큰 공감을 자아냈다. 잇지의 고민이 여성주의가 사회적 지지를 점점 잃어가면서 운동가들이 겪는 현실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로리주희 줌마네 대표는 “대학 내 여성주의의 현실일 뿐만 아니라 우리 전체의 과제가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줬다”고 평했다.
잇지는 ‘언니’들의 위로와 공감에 “어디서도 받아보지 못했던 위로와 격려, 지지를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20대는 저마다 다른 고민과 생각을 가지고 있어 내가 20대를 상징하거나 대표할 수 없다”며 자신이 20대 영 페미니스트의 상징이 되는 것에 대해선 경계하기도 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 20대 참가자도 “선배, 언니들이 잇지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세대 간 갈등을 풀고 새로운 운동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었지만 잇지의 발언 시간을 끝으로 회의 기간 동안 서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풀 수 있는 자리는 없었다”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