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숙의 새로 쓰는 ‘백조의 호수’이야기
지난 3일 발레 ‘백조의 호수-Ⅳ 사랑에 통(痛, 通)하다’의 연습 현장을 찾았다. 마침 흑조(한혜주)가 지그프리트 왕자(정주영)를 유혹하는 장면의 연습이 한창이었다. 밤 10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연습실의 안무가들은 마치 실제 공연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서로의 호흡을 맞췄다.
이번 공연은 안무가 조기숙 교수(이화여대 무용과)가 지난 2008년부터 제작해 온 ‘백조의 호수’ 연작 시리즈의 마지막 무대다. 조 교수는 발레의 고전 ‘백조의 호수’를 4년에 걸쳐 매해 새로운 해석으로 선보여왔다. 제도권의 발레단이나 직업 발레단도 창작 발레를 내기 힘든 한국 무용계의 현실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는 ‘사랑에 통하다’를 부제로 고통(痛)을 통해 다다르는 초월적(通) 사랑의 경지와 자기성찰의 주제의식을 담았다. 고전발레로서의 작품을 해체 시킨 후 스토리(문학성)보다는 춤 자체(몸성)에 초점을 둔 깊이 있는 해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엄격한 규칙과 동화적 스토리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해석과 다양한 표현으로 안무가의 개성을 드러내온 조기숙 교수 특유의 연출력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작품에서는 토슈즈를 신고 하는 발레와 벗고 하는 모던발레를 모두 감상할 수 있다. 전통발레와 현대발레를 넘나드는 표현력을 갖춘 무용수들은 분명하고 확신에 찬 몸짓을 보여준다. 마왕 역을 맡은 홍세희씨가 남성 무용수를 능가하는 절도 있는 춤을 보여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조기숙 안무가 특유의 발레 생산 시스템 덕이다. 구성원들과의 워크숍 등을 통한 집단 창작 시스템을 사용하기에, 무용수들이 작품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고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작품은 이렇게 민주적인 논의 구조 없이 해외 유명 안무가의 레퍼토리를 답습하던 한국 발레의 한계도 뛰어넘었다.
공연은 12일, 13일 양일간 이화여대 ECC 내 삼성홀에서 열린다.
예매처는 티켓링크(1588-7890), 인터파크(1544-1555)다. 문의 이오공감(02-704-6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