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선거에서는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싹쓸이하는 지역주의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 2008년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은 호남지역 전체 29석 중 단 1석도 얻지 못했고, 통합 민주당은 영남지역 전체 68석 중 2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이런 지역주의는 정당정치 훼손, 후진 선거문화의 양산, 정책선거의 실종, 국민의 정치 무관심 증대, 정치·사회적 통합 저해 등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양산하고 있다.

최근 정치권과 중앙선관위는 이런 지역주의를 완화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석패율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석패율 제도’란 일본이 1996년 선거제도를 기존의 2~6인의 중선거구제에서 지역구 소선거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를 혼합하는 제도로 바꾸면서 채택한 것이다. 선거에 나온 후보가 지역구·비례대표에 동시에 등록해 지역구에서 낙선하더라도 아깝게 떨어진 후보자들 중에서 석패율이 높은 후보를 비례대표로 ‘부활 당선’ 시키는 제도다. 석패율은 지역구 선거에서 낙선한 후보의 득표수를 해당 지역구의 당선자 득표수로 나눈 수치다.

중앙선관위는 지난 3월 24일 ‘정치관계법 개정 토론회’에서 한국형 석패율 제도(지역구결합 비례대표의원제) 도입을 제안했다. 중앙선관위 안에 따르면 한 정당이 전체 지역구 의석의 3분의 1을 차지하지 못한 시·도에서 10% 이상을 득표하고도 낙선한 지역구 후보들은 1차 구제 대상이 된다. 동일 시·도의 같은 당 출마자들은 사전에 비례대표 순번을 공동으로 받게 되는데, 낙선하면 그 지역구의 평균 유효 득표수로 나눈 수의 백분율이 가장 높은 후보자를 당선인으로 한다. 그렇다면 이런 석패율 제도는 과연 지역주의를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을까.

중앙선관위 안을 지난 2008년 총선에 대입해 시뮬레이션해 본 결과, 한나라당은 호남지역에서 3명, 민주당은 영남지역에서 5명을 구제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하튼 석패율 제도가 채택되면 한나라당이 영남, 민주당이 호남 지역구 의석을 사실상 싹쓸이하는 것을 일부 완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이런 지역주의 완화 효과에도 불구하고 소수 정당과 시민단체에서는 이 제도가 거대 정당의 이기주의를 부추길 것이라면서 반대하고 있다.

자유선진당은 석패율 제도는 “결국 양당제도의 폐단을 심화시킨다”며 “한나라당이나 민주당과 같은 현재의 양 당이 의석수를 더 늘리는 것뿐이고, 소수당에는 전혀 혜택이 없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석패율제는 지역구도 타파에 별 도움이 안 되고 전문가와 소외 집단 대표자를 충원하는 비례대표제도의 본질을 훼손한다”고 주장한다. 참여연대는 석패율제로 “거대정당의 과다 대표와 군소정당의 과소 대표 현상이 강화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그런데,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석패율 제도는 양성평등의 원칙에 위배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현재와 같이 여성의 지역구 출마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 제도는 지역주의 타파를 명분으로 남성 후보들에게만 특혜를 주는 것으로 변질될 수 있다. 더구나 석패율 의석수만큼 여성, 장애인, 각종 직능 대표와 전문직에 돌아가는 비례대표 의석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석패율 제도가 성공하려면 비례대표 의석수를 100석 정도로 대폭 늘려야 한다. 동시에 지역구에서 여성 후보 30% 할당제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석패율 명단에 남녀가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